본문 바로가기
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43:16~34 “호랑이 굴 속으로”

by 기대어 보기를 2026. 5. 15.

[창43:16-34]
16 요셉은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자기의 청지기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정오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
17 청지기가 요셉의 명대로 하여 그 사람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니
18 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번에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는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하고
19 그들이 요셉의 집 청지기에게 가까이 나아가 그 집 문 앞에서 그에게 말하여
20 이르되 “내 주여, 우리가 전번에 내려와서 양식을 사 가지고
21 여관에 이르러 자루를 풀어 본즉 각 사람의 돈이 전액 그대로 자루 아귀에 있기로 우리가 도로 가져왔고
22 양식 살 다른 돈도 우리가 가지고 내려왔나이다. 우리의 돈을 우리 자루에 넣은 자는 누구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나이다.”
23 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하고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내고
24 그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고 물을 주어 발을 씻게 하며 그들의 나귀에게 먹이를 주더라.
25 그들이 거기서 음식을 먹겠다 함을 들었으므로 예물을 정돈하고 요셉이 정오에 오기를 기다리더니
26 요셉이 집으로 오매 그들이 집으로 들어가서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땅에 엎드려 절하니
27 요셉이 그들의 안부를 물으며 이르되 “너희 아버지, 너희가 말하던 그 노인이 안녕하시냐? 아직도 생존해 계시느냐?”
28 그들이 대답하되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평안하고 지금까지 생존하였나이다.” 하고 머리 숙여 절하더라.
29 요셉이 눈을 들어 자기 어머니의 아들, 자기 동생 베냐민을 보고 이르되 “너희가 내게 말하던 너희 작은 동생이 이 아이냐?” 그가 또 이르되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30 요셉이 아우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31 얼굴을 씻고 나와서 그 정을 억제하고 “음식을 차리라.” 하매
32 그들이 요셉에게 따로 차리고 그 형제들에게 따로 차리고 그와 함께 먹는 애굽 사람에게도 따로 차리니, 애굽 사람은 히브리 사람과 같이 먹으면 부정을 입음이었더라.
33 그들이 요셉 앞에 앉되 그들의 나이에 따라 앉히게 되니 그들이 서로 이상히 여겼더라.
34 요셉이 자기 음식을 그들에게 주되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다섯 배나 주매 그들이 마시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였더라.




유다의 일행은 막내 베냐민을 데리고 이집트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의 총리를 다시 만났습니다.

요셉은 형들과 자신의 동생인 베냐민을 보고는 자신의 청지기에게 그들을 집으로 들이고 짐승을 잡아 음식을 준비하도록 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청지기의 인도를 따라 이집트 총리의 저택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그들의 마음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두려웠습니다.

유다의 설득으로 이스라엘은 베냐민을 데리고 가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집트로 향했습니다.

유다를 비롯한 형제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제가 그들 가운데 있었다면 정말 걱정을 한가득 안고 갔을 것 같습니다.

일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그것은 ‘타이밍’입니다. 지금의 상황을 ‘타이밍’이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최악입니다.

시므온이 감옥에 있었던 시점으로부터 최대한 빨리 베냐민을 데리고 와서 자신들이 평범한 가족임을 증명해야 했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자루에서 돈을 발견한 이후에도 최대한 빨리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유다의 말로는 두 번이나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만큼 늦은 것입니다.

이렇게 늦어짐으로써 다가오는 부담감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진실성의 문제입니다. 베냐민을 데리고 가는 것이 가족임을 증명하는 일이었는데 그만큼 늦어진 것입니다.

또 두 번째는 시므온을 대하는 가족의 태도입니다. 그 기간 동안 어쩌면 시므온은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족이 서로를 챙기고 아끼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는 부담감이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자루에 든 돈에 대한 것입니다. 그 돈이 탐이 나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베냐민을 데리고 가기는 하지만 문제는 이런 다양한 부담감을 가지고 가는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불편하고 두렵고, 어떤 부분에서는 자존감이 낮아지고 부끄럽기도 한 상황입니다.

그런 내적인 상태 속에서 그들은 이집트 총리의 청지기를 따라 저택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틀림없이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했던 두려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집트의 총리는 그들의 태도에 대해서 책망하거나 비난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생각지도 못했던 환대를 받았습니다.

이 지점에서 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제 자신의 경험 속에서도 발견되고 오늘 말씀 속에서도 발견되는 부분입니다.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살다 보면 우리는 실수를 하고 잘못을 행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것을 바로잡으려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을 바로잡고자 할 때 누구나 겪게 되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순간 앞에서 수치심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감당해야 할 책임이 두렵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일로부터 도망가는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회피하고, 핑계를 만들고,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변명합니다.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가장 두렵고 힘든 시점은 마음으로 결심하고 문제의 실체 앞에 서는 순간입니다. 가령 사과해야 할 상대방 앞에 서는 것, 책임져야 할 현장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두려움과 부끄러움 앞에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책임지려 하고 용기를 내어 사과하면 우리가 그렇게 두려워하고 걱정했던 일들이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문제 앞에서 걱정하며 멈춰 있는 것보다 그 문제 안으로 뛰어들어 해결하고자 움직일 때 오히려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들이 총리의 저택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공포나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은혜였습니다.

돌아봅니다. 우리에게는 해결해야 하는데 그대로 묻어두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생각만 하고 있다면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걱정은 걱정으로, 두려움은 두려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부딪치고 앞으로 나아간다면 희망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삶을 늘 지지하시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믿고 한 걸음 내디딜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그동안 회피하고 있었던 일이 있습니까?
2. 그 일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3.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 보셨습니까?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