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4:14-16]
14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요셉이 아직 그곳에 있는지라 그의 앞에서 땅에 엎드리니
15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을 잘 치는 줄을 너희는 알지 못하였느냐
16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요셉의 형들은 다시 이집트로 돌아와 요셉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는 요셉이 있었습니다.
요셉은 그들을 추궁했습니다.
요셉의 추궁에 유다의 대답이 시작됩니다.
유다는 요셉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 말들은 묵상할 지점들이 많습니다.
첫 번째로 유다가 요셉에게 한 말 중 죄에 대한 고백 부분을 묵상해보겠습니다.
유다는 “우리가 내 주께(요셉)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유다의 답답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분명 그들은 정직했으나 증명할 수 없기에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계속해서 자신들이 죄를 짓지 않았다고 변명하고 이해해 달라는 태도로 대하지 않고 전혀 다른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일차적으로 생각해 보면 요셉의 은잔을 훔친 죄에 대한 것이라 볼 수 있으나 그것을 의미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유다는 자신들이 정직한데, 즉 요셉의 점치는 은잔을 훔치지 않았다고 이미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자신들의 죄를 찾아내셨다는 말을 한 것은 여기에서의 ‘죄’는 은잔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찾아내신 유다와 형제들의 죄는 다른 죄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그들에게는 감춰왔던 죄가 있습니다.
그것은 요셉에 대한 죄입니다.
그들은 요셉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너무나 큰 죄였습니다. 너무나 부끄러운 죄였습니다. 요셉에게 죄를 지었고 아버지인 야곱에게도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속였습니다. 감췄습니다. 결과적으로 아무도 그들의 죄를 알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아무도 그들의 죄를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스스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죄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입을 다물고 결코 꺼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음을 닫아버리고 덮어 놓았을 것입니다. 다만 모두들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유다는 지금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을 보면서 깨달았을 것입니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은 너무 까닭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또 너무 억울한 일들입니다.
질문했을 것입니다.
-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 왜 이런 억울한 일들이 생길까?
그리고 그런 질문을 할 때마다 양심의 깊은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며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 감추고 덮어두었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는 죄가 떠올랐던 것 같습니다. 지금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죄를 들추어내신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다의 이 말은 요셉에게 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습니다.”
그렇게 보면 이 말은 지금의 상황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은잔 사건과 관계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했다는 것은 단순히 요셉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만인 앞에서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유다는 지금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덮어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종종 죄에 대해 덮어두시고 악인들이 잘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악인에 대해서 하나님이 아무것도 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악인이 죄에 유기되는 것일 뿐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죄가 드러나게 하시고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시는데, 이는 그렇게 하심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이 관점은 매우 조심해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모든 불행이 하나님의 심판이거나 누군가의 죄의 결과라거나 하나님이 그것을 들추어내신다는 방식으로 일반화시키면 안 됩니다. 특히 그런 관점으로 타인을 바라보면 그것은 폭력이 됩니다. 오직 스스로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성찰해야 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복수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꾸짖고 책망하시는 이유는 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돌이키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어쩌면 요셉의 계략입니다. 형들에 대한 복수심이나 어떤 목적을 가지고 벌이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 속에서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요셉의 방법을 하나님이 사용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은 요셉의 마음에도 이미 역사하고 있고 유다와 그의 형제들의 마음에도 이미 일하고 계십니다.
유다는 그 하나님의 일하심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봤던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를 불행하거나 억울하다는 마음만으로 원망하고 분통할 일이지만 유다는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감추었던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생길 때 우리는 다양한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그런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그 이유를 찾고 묵상합니다.
유다의 자기 성찰 앞에서 저 역시도 그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신 경험은 무엇입니까?
2. 불행이나 어려움을 만날 때 가져야 할 건강한 관점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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