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44:17~34 “유다의 고백 2”

by 기대어 보기를 2026. 5. 19.

[창44:17-34]
17 요셉이 이르되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
18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당신의 종에게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아뢰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노하지 마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이다
19 이전에 내 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아버지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20 우리가 내 주께 아뢰되 우리에게 아버지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가 노년에 얻은 아들 청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가 남긴 것은 그뿐이므로 그의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
21 주께서 또 종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내게로 데리고 내려와서 내가 그를 보게 하라 하시기로
22 우리가 내 주께 말씀드리기를 그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그의 아버지가 죽겠나이다
23 주께서 또 주의 종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 막내 아우가 너희와 함께 내려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기로
24 우리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로 도로 올라가서 내 주의 말씀을 그에게 아뢰었나이다
25 그 후에 우리 아버지가 다시 가서 곡물을 조금 사오라 하시기로
26 우리가 이르되 우리가 내려갈 수 없나이다 우리 막내 아우가 함께 가면 내려가려니와 막내 아우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음이니이다
27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28 하나는 내게서 나갔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틀림없이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29 너희가 이 아이도 내게서 데려 가려 하니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30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31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32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33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34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유다는 앞에서 요셉의 청지기에게 말했던 대로 자신과 베냐민 그리고 모든 형제들이 노예가 되겠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요셉은 은잔 자루가 발견된 베냐민만 자신의 종이 될 것이라 말합니다.

 

요셉은 처음부터 베냐민에게 마음을 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형들에 대한 감정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자신의 동생인 베냐민에게는 마음이 쓰였습니다. 요셉은 어쩌면 그 옛날 자신에게 그렇게 끔찍한 짓을 했던 형들로부터 자신의 동생인 베냐민을 떼어놓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냐민만 종을 삼겠다는 말은 사실은 베냐민을 곁에 두겠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요셉의 제안에 유다와 다른 형제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베냐민에 대한 형제들의 생각은 어떠했을까요? 베냐민이 형제들과 어떤 관계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버지 야곱은 이 베냐민을 더 편애했다는 것입니다.

 

요셉을 편애했던 그 마음에, 요셉을 잃어버린 슬픔과 걱정으로부터 비롯된 마음이 베냐민에게 향했을 것입니다. 베냐민을 더 품에 감싸고 길렀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형제들과 베냐민의 관계도 그렇게 친밀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시므온을 데려오기 위해 베냐민을 데리고 왔어야 했을 때에도 아버지의 그 편애로 시므온은 지금까지 옥에 갇혀 있었었습니다. 저라면 상당한 차별감을 느꼈을 것이고 아버지로부터 베냐민 외에 다른 형제들은 소중하지 못하다는 취급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일어난 일은 실제로 베냐민에 대해서 오해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쩌면 베냐민에게 책임을 묻고 떠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아주 단호하게 이 모든 문제를 자신의 책임으로 떠안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했던 약속을 지키려 하고 또 아버지를 걱정해서 베냐민 없이는 떠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베냐민을 대신해 종이 되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우리는 이전의 유다를 알고 있습니다. 유다는 한때는 아버지의 걱정이었던 사람입니다. 요셉을 미워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떠나 살면서 가나안 여인과 결혼을 하고 아들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다말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속임수도 쓰고 때로는 매정하고 포악한 일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유다는 완전히 달라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유다는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책임을 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지금의 유다는 사실 책임질 수 있는 힘이 없기에 스스로를 희생해서 책임을 지려 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지만 아버지를 너무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제는 거짓이 아닌 진정성 있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 까닭일까요? 아니, 유다가 이렇게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결국 왕의 계보를 이어가는 사람이 되고

메시아의 조상이 됩니다.

 

유다가 스스로 그렇게 되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만지실 때 유다는 진심으로 반응했던 결과입니다. 그러기에 감사함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도 사실 그때의 유다에 비해 더 나은 부분이 없습니다. 여전히 자기 중심적이며 이기적이며 계산적입니다. 무엇보다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유다를 변화시켜 주시고, 유다도 하나님의 만지심에 진심으로 반응했기에 우리 또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변화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스스로에게 변화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2. 어떻게 하면 변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