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45:1~15 “자신을 밝힌 요셉”

by 기대어 보기를 2026. 5. 20.

[창45:1-15]
1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2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9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아뢰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지체 말고 내게로 내려오사
10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11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하더라고 전하소서
12 당신들의 눈과 내 아우 베냐민의 눈이 보는 바 당신들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입이라
13 당신들은 내가 애굽에서 누리는 영화와 당신들이 본 모든 것을 다 내 아버지께 아뢰고 속히 모시고 내려오소서 하며
14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우니라
15 요셉이 또 형들과 입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서야 요셉과 말하니라


 

유다의 진정성 있는 간청에 요셉은 소리를 높여서 그곳에 있는 모든 자신의 종들을 물러가라 했습니다. 형제들을 향한 정을 억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그 소리가 이집트 사람들에게 들렸고 파라오의 궁에도 들렸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자신을 밝힙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안부를 묻습니다. 그 순간 요셉의 형들은 너무 놀라서 어떤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눈빛으로 요셉을 바라보는 형들에게 요셉은 다시 한 번 자신을 밝힙니다. 요셉은 눈앞에 서 있는 형들, 즉 당신들이 이집트에 팔아 버린 당신들의 동생 요셉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은 유다나 다른 형제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이 장면에는 두 가지 마음이 교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형제들의 입장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잘못이나 지난날의 실수를 당사자가 없는 상황에서는 비교적 쉽게 고백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이미 지난 일이고 책임져야 할 당사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당사자 앞에서 과거의 잘못을 고백하는 것은 훨씬 어렵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하더라도 그 일로 인해 피해와 고통을 본 당사자가 눈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지금까지 이집트의 총리에게 자신들의 죄와 부끄러운 일들을 이야기했습니다. 눈앞에 당사자인 요셉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당사자가 바로 눈앞에 있었습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지나가 버리고 잊혀진 그 과거의 일이 순간 다시 시간을 거슬러 눈앞에 나타나 버린 것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충격과 공포, 근심과 한탄이 그들에게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때의 그들이 겪은 감정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의 죄를 마주하게 될 때 느낄 감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는 다른 감정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바로 요셉의 감정입니다.

 

요셉은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억울함의 눈물이 아닙니다. 분노에 찬 절규도 아닙니다. 속단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형제애,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 가족의 사랑에 대한 간절함에서 나온 눈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미 요셉은 마음속으로 지난날의 모든 고통과 아픔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 자신에게 닥쳤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분명 힘들고 아픈 긴 터널과 같은 시간들을 지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사용하시려는지를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요셉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모든 일들이 자신에게 원수 같은 형들을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고백합니다. 어찌 보면 인간적인 성공을 이루었으나 그 역시도 야곱의 가족을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요셉을 봅니다. 그가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데 그 모든 것이 느껴집니다.

 

형들에 대한 깊은 상처와 복잡한 감정이 가득했으나 한편으로는 사랑받지 못함에서 온 결핍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으나 여전히 그 내면에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했던 깊은 상처와 동시에 그 사랑을 갈구하는 연약함도 보입니다. 그러면서 이 크고 슬픈 인생을 홀로 감당하면서 그 모든 아픔 속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발견하고 오히려 원수 같은 형들을 용서하고 품어 버리는 놀라운 선택을 합니다.

 

요셉은 우리처럼 연약하지만 동시에 깊은 신앙과 믿음으로 삶의 고통을 승화시켜 낸 위대함을 봅니다.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이 그렇고, 하나님이 연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분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합니다.

 

또한 더 나아가 오늘 요셉은 예수님을 연상시킵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요셉을 팔아넘긴 형들과 같습니다. 온갖 죄악이 가득한 인생이 우리 자신입니다. 그 옛날 예수님을 조롱하며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 그들이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해 저주했던 사람들에 대해 “자신들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하니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었습니다. 기도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고, 그것은 요셉처럼 삶의 고통과 아픔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찾아내며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상처를 경험하고 그 상처를 붙잡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요셉을 통해 우리의 삶을 붙잡는 하나님 안에서는 우리의 상처조차도 은혜의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삶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의문을 갖고 원망하기보다 하나님께 맡기며, 요셉처럼 또 예수님처럼 우리의 삶의 모든 아픔과 흔적도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고통 속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2. 누군가를 용서하여 그에게 선을 베푼 일이 있습니까?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