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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45:16~20 “파라오의 호의”

by 기대어 보기를 2026. 5. 21.

[창45:16-20]  
16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문이 바로의 궁에 들리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기뻐하고  
17 바로는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에게 명령하기를 너희는 이렇게 하여 너희 양식을 싣고 가서 가나안 땅에 이르거든  
18 너희 아버지와 너희 가족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의 좋은 땅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19 이제 명령을 받았으니 이렇게 하라 너희는 애굽 땅에서 수레를 가져다가 너희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 너희 아버지를 모셔 오라  
20 또 너희의 기구를 아끼지 말라 온 애굽 땅의 좋은 것이 너희 것임이니라  


 


요셉의 대성통곡은 이집트의 파라오의 귀에도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도 밝혀졌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왔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파라오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이 기뻐했습니다.  

파라오는 요셉을 불러 이집트에 요셉의 가족이 거주할 좋은 땅을 줄 테니 아버지와 형제를 비롯한 모든 가족을 데리고 오도록 합니다.  

이 지점에서 묵상을 해 보겠습니다.  

먼저는 요셉 형들의 사건에 대한 파라오의 반응에서 묵상할 것이 있습니다.  

파라오는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말에 기뻐했습니다. 다른 신하들도 기뻐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은데 사실 이것은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파라오는 진정으로 기뻐했습니다. 그것은 이집트에 좋은 땅을 주고 요셉의 가족이 살아갈 토대를 마련해 주겠다는 부분에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파라오라는 이미지는 이집트의 절대 권력자이며 교만한 왕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파라오는 요셉과 요셉의 가족에게 큰 호의를 베풀고 있습니다.  

사람은 단편적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시각에서 보면 독재자이며 자신을 신으로 자처하는 교만한 사람이지만, 오늘 본문에서 보여 준 그의 태도는 다른 면모가 있습니다.  

왕으로서 신하의 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신하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기꺼이 해 주는 리더입니다. 다양한 리더들이 있지만 오늘 파라오가 보여 준 리더십은 요셉을 아끼고 진정으로 축하해 줄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잠시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축하할 일을 만날 때 어떻게 반응합니까? 어쩌면 누군가의 축하할 일을 통해 무언가 우리 자신도 유익을 얻을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까?  

이를테면 월급을 받은 친구에게 밥을 사라거나, 좋은 일이 있는 친구에게 한턱쏘라는 식의 반응입니다. 오늘 파라오는 축하해 줄 일이 있는 친구에게 밥을 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축하의 의미로 밥을 사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촌이 밭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 우리의 정서인데, 파라오가 보여 준 모습은 밭을 산 친구에게 밭에 심을 씨앗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 중 하나입니다. 누군가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어떤 사심이나 개인적인 다른 목적이 아닌 진정으로 복을 빌어 주는 그 마음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의미입니다.  

또 다른 것도 있습니다. 한 가지 의문을 가집니다. 파라오는 왜 요셉의 부모와 형제들을 모두 불러 살아갈 장소를 마련해 준 걸까요?  

이미 파라오가 보여 준 행동의 의미를 나눴지만 여기에는 다른 것도 있습니다. 바로 요셉입니다.  

만약 요셉이 이집트의 파라오의 궁에 살면서 자신의 과거의 이야기를 했었다면 어떠했을까요? 어떻게 보디발 장군의 가정 총무가 되었고 어떻게 감옥에 갇혀 있었는지 이야기해야 할 상황들이 분명 있었을 것 같습니다.  

만약 요셉이 형들이 자신을 죽이려 했고 노예로 팔아 버렸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파라오가 그런 과거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파라오는 결코 요셉의 가족들에게 그런 선의를 베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요셉의 형들을 감옥에 가두고 그 옛날의 죄를 치르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성경에는 더 이상 나오지 않지만 보디발 장군이나 그의 아내에 대해서도 처벌을 명했을지도 모릅니다.  

다시 본문의 관점에서 파라오가 요셉의 형들이 온 것을 축하하는 것을 보면 요셉은 과거의 상처를 고발하며 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가족 안에 있는 상처를 잘 드러내지 않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트라우마나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 하는 생각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를 떠나서 요셉은 자신의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떠벌리고 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요셉의 형들이 과거에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 파라오를 비롯해 이집트의 신하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요셉이 보여 준 태도를 묵상해 봅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형들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원수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즉, 나에게 좋지 않은 행동을 했다고 해서 누군가를 비방하며 선입견을 만드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말에 조심했고 사람에 대해서 말할 때 조심했던 것 같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상처를 누군가를 향한 증오로 쌓아 가지 않았고 그 결과로 누군가를 무너뜨리지 않았습니다. 허물을 말함으로 관계를 파괴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침묵과 용서를 통한 생명의 길을 열었습니다.  

입술이 가벼워 늘 날카롭고 가시 돋친 말로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우리지만, 오늘 요셉을 보면서 우리의 입술에서 회복이 일어나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축하받을 사람에게 진정으로 축하해 준 일은 무엇입니까?  
2. 누군가를 흉본 경험은 무엇입니까?  
3. 누군가에 대해서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도록 말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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