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48:1~7 “어떤 사람”

by 기대어 보기를 2026. 6. 2.

[창48:1-7]
1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말하기를 네 아버지가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2 어떤 사람이 야곱에게 말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3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4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5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6 이들 후의 네 소생은 네 것이 될 것이며 그들의 유산은 그들의 형의 이름으로 함께 받으리라
7 내게 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도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 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아직도 먼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 (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야곱이 병이 들었습니다. 요셉은 두 아들을 데리고 야곱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요셉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요셉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이제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을 양자로 맞이하고 축복하는 일이 진행됩니다.

 

굉장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 지점을 묵상하기 이전에 말씀에서 눈에 잡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어떤 사람’이 등장합니다. 말 그대로 어떤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단서가 하나도 없습니다.

 

알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신비로운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성경에는 종종 이런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과 모든 사건이 다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성경이 상당히 많은 것을 담고 있지만 대표성의 원리 안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경우에는 오늘 본문처럼 이름 없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성경이 그 이름을 기록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거지 나사로가 집 문앞에서 죽어가는 상황에도 매일같이 연회를 열며 즐겼던 이름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더 중요한 사건을 강조하기 위해 그 이름이 가려진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 경우입니다.

 

본문은 어떤 사람이 누구인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야곱이 아팠다는 사실이고, 그 야곱을 만나기 위해 요셉이 두 아들을 데리고 왔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진행되는 사건이 더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과 같은 표현이 등장합니다. 중요한 지점은 선명합니다. 야곱과 요셉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 중심 사건입니다.

 

이 어떤 사람은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지만 잠시 머물러 그를 생각해 보니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를 알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동일인일 수도 있고 동일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누구냐가 아니라 그가 어떤 역할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이 어떤 사람은 야곱이 병이 들었다는 사실을 요셉에게 전했습니다. 또 요셉이 왔다는 사실을 야곱에게 전해 야곱이 힘을 내어 요셉을 맞이하게 했습니다.

 

이 어떤 사람은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지만 야곱과 요셉의 만남을 만들어 낸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만남은 하나님의 구속사에 의미 있는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이 이름 없는 사람은 끝까지 알 수 없는 무명의 사람이지만 요셉과 야곱을 이어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높이 살 만한 일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있었던 일을 그냥 전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중요한 전환점을 일으키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 이름 없는 사람이 오늘 우리의 자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 되고 그를 통하여 복이 세상으로 흘러갑니다. 복의 통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아브라함의 자손들, 하나님의 백성들, 그리스도인들은 그 역할을 이어받은 사람들입니다.

 

야곱이 바로를 축복했고 아브라함으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나그네에게 선을 베풀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며 하나님의 축복이 이어지는 통로가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는 이름이 있어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보다 그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무명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이름 없는 통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높으신 분이시지만 가장 낮은 종의 모습으로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도 높임받기 위해 사신 것이 아니라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섬기고 사랑하고 심지어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통로가 되어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이름 없는 구원의 통로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우리도 이름 없는 사람들로 살아야 하고 사람들이 몰라주고 또 세상에서 중요하지도 않아도 축복을 흘려보내는 통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되어야 함을 묵상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아무도 모르는 선행을 행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2. 이름 없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던 경험은 무엇입니까?

3. 무명의 통로로 살아가려 한다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