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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49:1~4 “야곱의 예언 - 르우벤”

by 기대어 보기를 2026. 6. 5.

[창49:1-4]
1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2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3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4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야곱이 죽음을 앞두고 아들들을 모이게 했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에게 ‘후일에 당할 일’을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후일에 당할 일’이란 [אַחֲרִית הַיָּמִים(아하리트 하야밈)]으로 ‘날들의 마지막’ 또는 ‘장래’의 의미가 있습니다. 야곱은 아들들,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말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장래 일에 대한 예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야곱은 예언가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보여 주셨기 때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야곱의 아들들, 좀 더 정확히는 그 아들들의 후손에게 있을 일들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1. 장자 르우벤

 

야곱은 르우벤에 대한 예언을 합니다. 르우벤을 향해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르우벤은 야곱의 장자입니다. 관습에 따랐다면 르우벤은 장자의 상속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말합니다. 르우벤은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지만 물의 끓음 같았은즉 탁월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탁월하지 못하리니’는 [לֹא תוֹתַר(로 토타르)]라는 말로,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며 더 이상 장자로서 그 첫 자리를 유지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이유는 야곱의 첩 빌하와 동침하여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르우벤의 죄를 표현하기를 ‘물의 끓음 같았은즉’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פַּחַז כַּמַּיִם(파하즈 카마임)]으로 물처럼 넘쳐흐른다, 물처럼 제어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르우벤의 직접적인 죄는 성적인 죄였지만, 야곱의 표현은 그 죄의 본질이 인간의 감정과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비슷한 사람으로 에서가 떠오릅니다. 순간의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야곱에게 팥죽을 얻는 대가로 자신의 장자권을 넘긴 경솔함과 충동적인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 일로 인해 르우벤은 장자였지만 장자로서의 유업을 잇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말은 르우벤 지파의 역사 속에 나타납니다.

 

출애굽 당시 르우벤 지파는 상당히 큰 지파였습니다. 인구조사를 통해 나타난 숫자는 46,500명(민수기 1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43,730명(민수기 26장)으로 감소합니다.

 

또한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르우벤 지파는 요단강 동편에 있는 땅을 마음에 들어 하여 그 땅에 머물기를 요구합니다. 그 땅은 목축을 하기 좋은 땅이어서 탐낼 만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약속의 땅인 가나안이 아닌 다른 곳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르우벤 지파 출신의 뛰어난 지도자는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은 르우벤이 행한 죄와 장자권을 상실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가 행한 죄는 인류 역사 속에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으며, 르우벤처럼 그 죄에 넘어진 자는 자신의 탁월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지금도 수많은 리더들이 그 앞에 넘어져 부끄러운 결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일이 르우벤 한 사람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르우벤이고, 르우벤이 1차적으로 이 일로 인해 장자의 명분을 잃어버렸지만 르우벤 한 사람의 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르우벤 지파에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습니다.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공동체 안에서는 한 사람의 문제는 반드시 전체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누군가의 부끄러운 행위는 그 공동체를 부끄럽게 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의 내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는 것이 나와 연결된 공동체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의 부끄러운 행위는 그 자신의 탁월함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결과를 만듭니다.

 

야곱의 말이 보입니다. 장자는 아버지의 능력이고 아버지의 힘의 시작입니다. 장자는 그런 존재입니다. 그런데 장자가 아버지의 수치가 되어 버렸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르우벤을 언약 공동체에서 제외시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르우벤의 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성적인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우리의 말과 행동, 그리고 감정과 욕구를 절제하지 못해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의 부끄러운 행위로 가리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게 합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묵상을 위한 질문]

1.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모습은 무엇입니까?

2. 사람들 앞에 부끄러운 모습은 무엇입니까?

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면 가장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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