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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49:5~7 “시므온과 레위”

by 기대어 보기를 2026. 6. 6.

[창49:5-7]
5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6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7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2. 시므온과 레위

시므온과 레위에 대해 야곱이 예언을 합니다.

그런데 이 둘을 한데 묶어서 예언합니다. 이 부분은 이 둘이 형제이고 서로 친밀했거나 비슷한 면이 많았기 때문이라 볼 수도 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야곱은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라고 말합니다. 먼저 도구란 [כְּלִי(켈리)]라는 단어로 도구를 의미하지만 의복이나 그릇과 같은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칼’도 도구 중 하나입니다. 다양한 것이 ‘도구’의 범주에 속합니다.

말씀에서 말하는 ‘칼’은 도구입니다. 이는 삶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되는 도구입니다. 어느 집에나 한두 자루의 칼이 있습니다. 칼은 생활에 꼭 필요한 도구입니다.

야곱은 그 칼이 폭력의 도구라고 말했습니다. 폭력은 우리 귀에 익숙한 단어인 [חָמָס(하마스)]입니다. 포악하고 잔인함, 압제, 탄압, 억압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쓰이는 칼은 폭력의 도구가 아닙니다. 유용한 도구입니다. 그런데 이 칼이 폭력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시므온과 레위의 인생에 있어서 절대로 지울 수 없는 사건이 있습니다. 그들의 누이 디나가 수치를 당한 일로 인해 세겜의 남자들에게 나쁜 의도로 할례를 받게 하여 고통 중에 있는 그들을 도륙한 사건입니다.

어찌하여 도구인 칼이 폭력, 즉 잔해하는 기계가 되었을까요?

야곱의 말을 들어보면 시므온과 레위의 감정이 나옵니다. ‘분노’, ‘혈기’, ‘노여움’입니다. 사실 이것은 그 자체로 죄는 아닙니다. 분노나 혈기나 노여움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감정들이 분출되어 나오는 이유도 다양합니다.

부당함, 차별, 억울함 등에 기인합니다. 정의감이 있기에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칼이 도구인 것처럼 이도 자연스러운 사람의 감정입니다. 그러나 이 감정이 파괴적인 일들을 만들고 죄를 짓게도 합니다.

절제 또는 통제되지 않는 분노는 폭력이 되고 자신을 비롯해 타인에게 해악을 끼칩니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 통제되지 못한 분노의 감정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점점 스스로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분노를 조절하는 방법에 대한 다양한 지식들과 훈련이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이 부분을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지 묵상해 봅니다.

성경은 분노를 죄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분노가 죄로 이어지는 것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엡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분노에서 죄로 이어지지 않게 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주는 힘 중 하나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나 고통을 마주할 때 그 감당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감당할 수 없는 것은 시련이나 고통뿐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분노도 포함됩니다. 분노가 우리 안에 차오를 때 우리는 ‘복수’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복수는 사실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심판자가 아닙니다. 바울을 통해 하나님은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말씀하십니다.

[롬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무엇보다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어떤 일들이 있었습니까?

폭력과 배신, 멸시와 조롱, 침 뱉음과 저주… 모두 예수님을 향해 사람들이 쏟아낸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첫 번째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눅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그것은 용서였습니다. 예수님은 분노를 못 느끼는 분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분노가 죄로 이어지게 하지 않으셨고 십자가 위에서도 복수 대신 용서를 선택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입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인간으로서 분노의 감정을 가졌으나 통제하지 못하고 폭력의 죄를 지었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야곱 중에서 나뉘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어지게 됩니다.

이스라엘 지파 중 시므온 지파는 인구수가 감소하고 독립된 넓은 영토를 얻지 못합니다. 특히 레위 지파의 경우는 땅을 얻지 못하고 각각 48개의 성읍에 흩어집니다.

그런데 레위의 경우는 조금 다른 역사적 사건들이 생깁니다. 출애굽 사건 중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놓고 숭배했던 일에서 ‘레위’는 하나님의 편에 선 사람으로 나아갑니다. 그 결과로 흩어지되 성전 봉사를 하고, 말씀과 거룩함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흩어지는 지파가 됩니다.

아이러니하면서도 동시에 분노의 감정을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그들의 정의감에 사로잡혀 분노하였고 절제하지 못해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레위였지만 후대에 하나님의 편에 서는 선택을 했었고 그로 인해 비록 흩어졌으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는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것 같습니다. 분노의 감정은 여전히 우리에게 찾아오는데 그것이 죄가 되지 않게 하나님께 기도하며 맡기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용서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 편에 서는 우리의 모습일 것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최근 분노한 일은 무엇입니까?
2. 어떻게 다루셨습니까?
3. 조절하지 못했다면 결과가 어떻습니까?
4.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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