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13:20-22]
20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숙곳을 떠나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쳤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곳까지 이동할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셨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을 비춰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낮에도 이동했고 밤에도 이동했습니다. 그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로 나아간 것을 사실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그들의 숫자가 정말 엄청났습니다. 민수기 1장 46절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출애굽했던 이스라엘의 숫자가 603,550명입니다. 그런데 이는 전투에 참가할 수 있는 연령대의 남성 숫자입니다. 그러니 실제로는 여성과 어린이, 노인들의 숫자는 포함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약 200만 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가정하에 200만 명이 이동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한 줄에 50명씩 1미터 간격으로 걸으면 약 40km의 거대한 무리가 형성됩니다. 그 간격을 25cm로 줄여도 10km에 해당하는 길이입니다.
보통 사람이 1시간에 4km를 걷는다고 보면 맨 앞사람과 뒤 사람의 거리는 2시간 30분입니다. 물론 25cm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했을 경우입니다. 그것이 느슨해지고 더 길어진다면 훨씬 더 긴 간격이 생길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무리를 낮에는 구름 기둥이 덮어 주었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밝혀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하고 놀라운 은혜라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초자연적인 섭리와 은혜는 또 우리에게 묵상의 포인트를 제공해 줍니다.
먼저는 길을 인도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로 나왔습니다. 광야는 불모지입니다. 그것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길은 있을 수 있겠으나 불모지로 나아가는 삶이란 불확실성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이후 겪을 감정의 변화일 것입니다. 이집트에서 나올 때 그들은 기쁨과 감격이 있었지만 곧 막막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의 손을 잡고 광야의 길을 걸어가면서 그 기쁨은 순간 불안으로 바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에게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길을 안내하셨습니다. 앞서 가셨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의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은 오늘 우리에게는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발에 등이고 우리가 가는 길에 빛입니다. 우리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실족하지 않게 비춰 주는 등이고, 우리가 광야와 같은 길에서 어디로 갈지를 비춰 주는 빛입니다.
사실 이것은 어느 정도 신앙생활을 하신 분이라면 다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여전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자꾸 다른 길을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계획과 마음의 소원에 따라 더 좋아 보이는 다른 곳을 응시합니다.
오늘 말씀에 하나님이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앞서 가시며 길을 인도하셨다는 것은 조금 관점을 바꾸면 하나님의 일방적인 행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저돌적으로 앞서서 계속 진군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마 이스라엘 백성이 늦게 따라와도 앞으로 그냥 나아가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앞서 가신다는 것은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의미도 포함됩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은 앞서 가시는 하나님의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구름 기둥이 나아가면 나아가고 멈추면 멈췄다는 것입니다.
어디로 갈 것인가?
언제 출발할 것인가?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속도에 맞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비추는 방향을 바라보고 지금 당장 한 걸음을 내디딜 때, 그 한 걸음을 말씀에 순종하는 선택으로 내딛는 것입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한 걸음 내딛는 것입니다.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내디딜 때 우리 앞에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다음 걸음을 어디로 내디뎌야 할지 말씀으로 여전히 우리에게 들려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말씀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 나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보다 내가 원하는 길을 더 바라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 오늘 말씀에 순종해서 내디딜 수 있는 가장 작은 한 걸음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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