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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출애굽기

[말씀묵상] 출애굽기 15:1~18 “모세의 찬양”

by 기대어 보기를 2026. 9. 7.

[출15:1-18]

1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3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4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최고의 지휘관들이 홍해에 잠겼고
5 깊은 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 속에 가라앉았도다
6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7 주께서 주의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르는 자를 엎으시니이다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 진노가 그들을 지푸라기같이 사르니이다
8 주의 콧김에 물이 쌓이되 파도가 언덕같이 일어서고 큰 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니이다
9 원수가 말하기를 내가 뒤쫓아 따라잡아 탈취물을 나누리라,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내 욕망을 채우리라, 내가 내 칼을 빼리니 내 손이 그들을 멸하리라 하였으나
10 주께서 바람을 일으키시매 바다가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거센 물에 납같이 잠겼나이다
11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12 주께서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
13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14 여러 나라가 듣고 떨며 블레셋 주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15 에돔 두령들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16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임하매 주의 팔이 크므로 그들이 돌같이 침묵하였사오니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께서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
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18 여호와께서 영원무궁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

 


 

 

바다를 건넌 이스라엘 자손은 모세와 함께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놀랍습니다. 이 아름답고 장엄한 가사의 곡을 어떻게 불렀을까요? 그것도 노래로서 음이나 리듬을 넣어 부를 수 있었을까요?

 

음악에 대한 달란트가 없는 저로서는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물론, 우리가 믿는 신앙 안에서 이와 같은 일들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이유도 알고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불려진 노래, 성경의 감동으로 고백된 하나님을 높이는 시구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과 모세가 불렀던 찬송의 가사에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이스라엘 자손이 홍해를 건너면서 그들이 눈으로 보고 경험했던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에 대한 찬양입니다.

 

그런데 후반부에는 블레셋, 에돔, 모압 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직 이스라엘 자손들은 블레셋이나 에돔, 모압을 만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민족들을 알았다 하더라도 문제는 아직 그런 일, 블레셋이 떨고, 에돔 두령들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고,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한 사건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지점 때문에 이 찬양은 학자들 사이에서 몇 가지 의견으로 나뉩니다.

 

주된 의견은 이 찬양이 언제 기록되었느냐에 대한 부분입니다. 오늘 본문만 봐도 당시 그 현장에서는 알 수 없는 내용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지점에 대해 설명해 주는 몇 가지 견해가 있지만, 조금 다른 지점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이 찬양의 시기에 대한 한 부류의 견해는 이 찬양이 그때 있었던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에 대한 찬양이면서 동시에 미래에 있을 블레셋과 에돔, 모압, 가나안 주민들과의 일들에 대한 예언적 찬양이라는 견해입니다.

 

이 견해가 맞느냐 틀리느냐보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백했던 찬양의 가사와 신앙에 대한 묵상입니다. 그리고 그 묵상으로부터 오늘 우리 시대의 찬송과 찬양을 되돌아봅니다.

 

우리는 찬양을 합니다. 찬송가를 부르기도 하고 CCM이라고 부르는 찬양을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찬송의 가사는 너무나 아름답고 신앙적입니다. 그래서 찬송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만 그 가사에 우리도 은혜를 경험합니다. 위로가 되기도 하고, 용기를 얻기도 하고, 감사가 넘치기도 하고, 은혜를 느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지금 이 예언적 찬송을 불렀다면, 블레셋이 두려움에 잡히고, 에돔 두령들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고,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했다고 찬송합니다.

 

하나님께서 영광과 권능으로 함께하시니 그 찬송의 가사처럼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말씀을 만나게 됩니다.

 

[민14:1-3]

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12명의 정탐꾼을 보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온 후, 그들의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반응입니다.

 

블레셋을 포함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온 그 이스라엘 백성이 오히려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 바다를 건너서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을 찬송했던 그들이 그 찬송의 가사와 정반대의 행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찬양은 찬양이고 현실은 현실인 것일까요? 시간이 조금 지나서 홍해 앞에서의 하나님의 구원을 잊어버린 것이 이유일까요?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우리에게도 남아 있습니다. 찬양의 감동과 은혜가 우리의 삶의 현장에까지 연속되지 않습니다.

 

찬양은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고백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노래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신앙으로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찬양과 삶은 무관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름다운 찬송을 노래했던 입술이 누군가를 비난하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가시를 쏟아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영광을 노래했으면서 삶으로 돌아가서는 또 근심하고 걱정하며 한숨을 내쉽니다.

 

너무 자주 그러기에 그것이 일상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일상의 모습이 되었어도 생각해 보니 당연한 것은 아닙니다.

 

입술로 찬양하고 마음으로 고백했던 가사가 삶에 머물러야 함이 맞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가 부른 찬양이 내일의 두려움 앞에서도 여전히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서 불렀던 찬양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한 그 순간에 신앙의 고백으로 남는 것, 어쩌면 그것이 찬양이 삶이 되는 순간일 것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가장 좋아하는 찬송이나 찬양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그 찬송은 여러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3. 좋아하는 그 찬송이 삶에서 진정성 있게 이어지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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