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15:19-21]
19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을 그들 위에 되돌려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지나간지라
20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21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이 짧은 세 문장은 미리암의 찬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내용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의 찬양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리암이라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본문에는 아론의 누이이며 선지자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전승과 탈무드에서 미리암에 대한 내용을 더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미리암이 선지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생각에는 미리암이 성인이 되어서 선지자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탈무드 「소타」 12b–13a에는 미리암이 모세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선지자였고, 모세가 태어나기 전 모세의 탄생과 이스라엘의 구원을 예언했다고 전승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미리암을 소개할 때 ‘모세의 누이’라고 하지 않고 ‘아론의 누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미리암은 모세가 태어나기 이전에 모세에 대한 예언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갈대상자에 담겨 나일강에 흘려 보내졌을 때, 미리암이 모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기 위해 멀리 서 지켜봤다고 합니다.
또한 미리암은 탈무드에 등장하는 여성 선지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탈무드 「메길라」는 일곱 명의 여성 선지자를 소개하는데, 그중 한 사람이 미리암입니다.
탈무드는 오늘 본문의 흥미로운 지점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그 흥미로운 지점은 ‘소고’입니다.
미리암은 손에 소고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여인들이 미리암을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을 추었습니다.
놀랍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이집트에서 나왔는지 그날 밤의 내용을 알고 있습니다.
어린양을 잡고, 그 피를 문의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허리에 띠를 띠고 서서 지팡이를 잡고 음식을 급히 먹고, 촉박하게 이집트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소고’가 등장합니다. ‘소고’란 [תֹּף(토프)]로 북이나 템버린 같은 악기를 의미합니다. 미리암 혼자가 아니라 여인들이 소고를 손에 잡았습니다. 어디서 난 것일까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유대 전승은 이 부분에서 ‘의로운 여성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기적을 행하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소고를 가지고 나왔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미리암에 대한 유대인들의 전승은 우리에게 ‘믿음’에 대해서 생각할 지점을 보여줍니다.
앞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래했는데, 그들은 18절이나 되는 분량의 아름다운 찬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런데 악기를 준비해서 연주하고 찬양하며 춤을 추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반면에 미리암의 찬양은 내용상 단 한 절입니다. 21절의 한 문장이 다였습니다.
그런데 그 찬양을 위해 소고를 준비해 왔고, 그 구원이 일어나자 소고를 치며 춤을 추며 찬송을 했습니다.
단 한 절의 찬송이지만 미리암과 여인들이 보여준 행동은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어쩌면 우리는 ‘믿습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기도를 드리고 그것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말 뒤에 우리의 행동은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마음일 때도 있습니다.
물론, 이 지점은 분별이 필요한 지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우리의 뜻을 주장하고 이루어지리라 믿는다는 맹목적인 믿음은 잘못된 것입니다. 또 어떤 믿음은 그 결과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그 결과를 인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대로 행동하는 것이 진짜 믿는다는 증거입니다.
미리암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실 것임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순간을 위해, 하나님께 찬양할 준비로 소고를 준비했습니다. 그것은 미리암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마 다른 여인들에게도 알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여인들도 소고를 준비해 나왔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의 마음으로 보면 전쟁터에 나가는 것 같은 상황에서 소고를 챙기는 것은 쓸데없는 짓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광야의 길로 나갈 때 하나라도 생존을 위한 도구를 챙기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각에서 소고를 준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모습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부터 비롯된 행동이었습니다. 그때를 위해 준비했던 것입니다.
믿음 앞에 오늘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아직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으나 믿음으로 드러날 그때를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소고는 무엇일까요?
묵상을 위한 질문
- 지금 기도하는 것 중에 ‘일어났으면 좋겠다’ 정도의 기대를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까?
-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이루실 일을 믿는다면 오늘 준비해야 할 소고는 무엇입니까?
- 지금 내게 쓸모없어 보인다는 이유로 준비하지 않고 있는 소고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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