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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출애굽기

[말씀묵상] 출애굽기 16:13~21 “만나로부터 - 3”

by 기대어 보기를 2026. 9. 14.

[출16:13-21]
13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14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15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사람 수효대로 한 사람에 한 오멜씩 거두되 각 사람이 그의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 하셨느니라
17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18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19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 하였으나
20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21 무리가 아침마다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고 햇볕이 뜨겁게 쬐면 그것이 스러졌더라

 


 

 

 

만나의 법칙 중 한 가지 핵심은 분배입니다. 만나는 한 사람이 한 오멜씩 거둡니다. 자신의 필요에 맞게 거둡니다.

더 많이 거두어서도 안 됩니다. 필요한 만큼만 거둡니다. 그것도 내일을 위한 필요가 아니라 그날 하루 필요한 만큼 거둡니다.

 

그런데 조금 의문이 생깁니다. 한 사람이 한 오멜씩이라는 양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생각해 보면 공평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먹어야 하고 어떤 사람은 적은 양으로도 충분합니다.

 

가령 어른과 아이가 같은 양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만나를 이스라엘 자손이 거두는데 그 거둠에 있어 공정과 공평, 평등 등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하는 지점입니다.

특히 오멜이라는 것이 조금 특이합니다. 오멜이란 [עֹמֶר(오메르)] 더미를 의미하는 물건을 재는 단위를 말합니다. 이는 1/10 에바인데 일반적으로 1.8~2.3리터 사이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측정할 수 있는 무게나 부피로써 그런 단위입니다. 그리고 정해졌습니다. 1인당 1오멜입니다. 그 안에 조금의 오차 범위가 있지만 그래도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만나를 많이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만나를 적게 거두었습니다.

 

한 오멜이라는 단위로 거두라면 모두 비슷한 양을 거두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분명 누군가는 많이 거두었고 누군가는 적게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지점은 그다음에도 있습니다.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각 사람이 먹을 만큼만 거두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보면 한 사람이 한 오멜의 만나를 거두어 들일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은 많이 거두었고 어떤 사람은 적은 양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그 수확한 양은 각각 한 오멜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오멜은 어떤 양이나 부피, 질량의 보편적인 측정 단위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각 사람의 필요가 한 오멜이라는 단위의 기준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측정은 공정하지 못하게 보이고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공정함이란 똑같은 저울추를 단 저울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나의 오멜은 그런 기준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많은 양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많이 주었으나 한 오멜이고, 적은 양으로도 충분한 사람에게는 적게 주었으나 역시 한 오멜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단위가 공정함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될 수 있을까요? 생각해 보면 그것이 가능하려면 있어야 할 것과 내려놓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있어야 할 것은 ‘사랑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정신’이며 없어야 할 것은 ‘개인의 욕심’입니다.

 

각자의 필요에 따른 분량이라고 해서 더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하고 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많이 가진다 하여 억울하거나 부당하게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필요 이상을 가지고자 하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나를 통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훈련시킨 것은 이와 같은 새로운 기준의 공정인 것 같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공동체성 경제관 같은 것입니다.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것이 공정하고 공평한 것이 되는 공동체 안에서만 가능한 원칙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초대교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후8:14-15]
14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15 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마게도냐 교회는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한 연보를 모았습니다. 마게도냐는 넉넉해서 드린 것도 아니고 가난하지만 억지로의 마음이 아닌 자원하는 마음으로 연보에 참여했습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넉넉한 고린도교회도 이 연보에 참여하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아진 연보는 만나의 법칙처럼 누군가가 풍요를 독차지하지 않으면서 각각의 필요에 따라 나눔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역시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성과 언제나 유혹받을 수 있는 개개인의 욕심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경쟁함으로 부를 축적하는 세대에 한 오멜의 법칙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경제 원리 중 한 가지는 한 오멜의 법칙인 것 같습니다.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는 것,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공간 안에서는 이 한 오멜의 법칙이 통용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굉장히 어려운 부분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 안에서는 분명 따를 수 있습니다. 가족이 그렇고 교회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속한 삶의 공간 안에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의 공정한 분배의 기준을 다시 점검해 봐야 하겠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공정과 공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 나의 욕심과 필요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3. 나의 필요를 정하고 나눠본 경험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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