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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출애굽기

[말씀묵상] 출애굽기 16:22~36 “만나로부터 - 4”

by 기대어 보기를 2026. 9. 15.

[출16:22-36]
22 여섯째 날에는 각 사람이 갑절의 식물 곧 하나에 두 오멜씩 거둔지라 회중의 모든 지도자가 와서 모세에게 알리매
23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24 그들이 모세의 명령대로 아침까지 간수하였으나 냄새도 나지 아니하고 벌레도 생기지 아니한지라
25 모세가 이르되 오늘은 그것을 먹으라 오늘은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오늘은 너희가 들에서 그것을 얻지 못하리라
26 엿새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일곱째 날은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없으리라 하였으나
27 일곱째 날에 백성 중 어떤 사람들이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
2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29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여섯째 날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일곱째 날에는 아무도 그의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30 그러므로 백성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니라
31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32 모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이것을 오멜에 채워서 너희의 대대 후손을 위하여 간수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광야에서 너희에게 먹인 양식을 그들에게 보이기 위함이니라 하셨다 하고
33 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
34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것을 증거판 앞에 두어 간수하게 하였고
35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었으니 곧 가나안 땅 접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
36 오멜은 십분의 일 에바이더라

 


 

 

만나에는 아주 특별한 법칙이 하나 있습니다. 기존의 일상의 법칙과는 다르게 적용되는 법칙입니다.

 

만나는 매일 아침 각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을 거둡니다. 하루 이상의 양을 거두어 축적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면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납니다.

 

그런데 여섯째 날에는 평소보다 두 배를 거둡니다. 이는 일곱째 날을 위한 것입니다. 일곱째 날에는 만나가 내리지 않습니다. 일곱째 날에는 안식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여섯째 날에 두 배를 거두고 남겨둔 것은 벌레가 생기지도 않고 냄새도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섯째 날 거둔 만나는 일곱째 날에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곱째 날에는 수확하는 행위를 하지 않고 여섯째 날에 거둔 것으로 먹습니다.

 

이를 통해 알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선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은 [שַׁבָּת(샵바트)]로 ‘그치다, 중지하다, 쉬다’는 의미의 [שָׁבַת(샤바트)]에서 파생되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휴식, 안식, 일을 멈추고 쉬는 날’입니다.

 

이 안식일의 근거는 창세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창2:2-3]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그리고 하나님은 만나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에게 안식일을 지키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안식일은 단순히 쉬는 날 이상의 의미들이 있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라는 사실에 기반된 것입니다. 물론, 어떤 법적 또는 제도적 기반 위에 휴일이라는 제도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믿음이 바탕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의문이 더 생깁니다. 일곱째 날에 안식하는 것은 모든 민족들에게 공통적이었을까요?

 

이집트의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집트는 10일 주기 체계(decade)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달을 세 개의 10일 단위로 나누는 방식입니다.

 

우리나라도 이와 같은 날짜 구분이 있었습니다. ‘순(旬)’입니다. 한 달을 10일씩 셋으로 구분해서 초순, 중순, 하순이라 불렀습니다. 우리나라의 오일장은 이날도 각 순마다 2회씩 열리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 좀 더 큰 의미로 10년 단위로도 사용이 됩니다. 60세를 뜻하는 육순, 70세를 뜻하는 칠순이 바로 그런 개념입니다.

 

이집트는 그렇게 10일 주기를 사용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민족은 어떠했을까요? 7일째 안식일을 지켰을까요? 아니면 이집트의 통제력 앞에 그렇지 못했을까요?

 

학자들은 이집트의 통제를 받는 상황에서 일곱째 날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견해들이 있습니다. 이집트는 하루라도 더 많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용해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 등을 건설하고자 했고, 사실 고대 사회에서 정기적인 휴일이라는 개념도 주어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많습니다. 쉼 없이 매일매일 노동을 했을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민족은 어쩌면 안식일에 대한 이해가 매우 빈약했을 수도 있습니다.

 

만나의 법칙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복 주신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이 세상의 창조주라는 것을 더더욱 깨닫게 하는 훈련의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여섯째 날까지는 매일 아침 만나를 거두어들여서 음식을 해 먹어야 하는 노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일곱째 날에는 그러한 노동의 행위 없이 예비된 음식을 먹으며 온전히 쉼을 누렸습니다. 이것은 삶의 필요를 채우시고 공급하시는 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쉼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굉장히 의미 있는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에서 쉼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고된 노동의 삶을 끊임없이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쉼의 가치를 더 많이 경험했을 것입니다. 쉼은 자신을 돌보고 삶을 회복하며 더 나아가기 위한 충전의 시간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존엄이기도 합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생명 존중의 가치를 깨닫고 모든 사람은 충분히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내포하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쉴 권리가 있고 그것은 보장되어야 합니다.

 

만나를 통한 안식일의 경험은 삶의 구조를 바꾸는 경험입니다. 이집트의 문화 안에서 경험한 삶의 체계를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기반한 삶의 체계로 바꿔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임을 믿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전히 우리의 삶에도 지속됩니다. 지금은 각 나라와 문화마다 조금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휴일 제도가 있고, 이는 종교적 전통과 역사적, 사회적 변화가 만든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휴일의 본래의 의미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모든 쓸 것을 공급해 주시며, 충분한 쉼은 모든 사람들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존엄의 권리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여러분에게 쉼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무엇을 하며 쉼을 누리고 있습니까?
  2. 여러분의 가정, 직장, 공동체 안에 누군가의 쉼을 빼앗고 있는 구조나 습관은 없습니까?
  3. 누군가의 쉼을 위해 여러분이 함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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