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19:10-13]
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며 그들에게 옷을 빨게 하고
11 준비하게 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셋째 날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서 시내 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12 너는 백성을 위하여 주위에 경계를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ㅁ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지니 산을 침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
13 그런 자에게는 손을 대지 말고 돌로 쳐죽이거나 화살로 쏘아 죽여야 하리니 짐승이나 사람을 막론하고 살아남지 못하리라 하고 나팔을 길게 불거든 산 앞에 이를 것이니라 하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준비시키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셋째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시내산에 강림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를 위해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준비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 옷을 빨라
- 셋째 날을 기다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를 성결하게 해야 했습니다. 옷을 빠는 것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성결이라는 것은 [קָדַשׁ(카다쉬)]로 거룩하게 하다, 성별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거룩함에 이르고 깨끗하게 청결을 유지하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와 같은 기준이라면 이집트의 파라오도 성결한 사람일 것입니다. 파라오 같은 사람, 왕은 스스로를 신성한 존재라 생각했고 사람들도 그렇게 믿었고 그 지위와 권한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의 품위와 권위를 위해 청결함을 유지하는 것 또한 당연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파라오 같은 사람은 거룩함과 깨끗함의 기준에 합당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세례요한과 같은 사람은 어떨까요? 세례요한에게서 깨끗함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는 광야의 야인처럼 살았습니다. 누더기 같은 낙타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고 매일 청결하게 스스로를 관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에게서 거룩함을 느끼겠지만 사람들이 그에게 매력을 느낀 부분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청렴하며 금욕적인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당시에 거룩함을 추구했던 종교지도자들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성결‘은 그런 기준이 아닙니다. 외적인 청결함이나 사회적 품위가 성경의 거룩함의 기준은 아닙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거룩한 것일까요? 무엇이 진정으로 깨끗한 것일까요?
거룩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진정한 거룩은 온전히 한 분 하나님 외에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만이 진정으로 거룩하신 분입니다. 단 한 점의 거룩하지 않은 것이 없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결함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가 스스로 성결하다, 거룩하다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하지 않은 곳에서 거룩한 하나님께 드려진 것, 하나님께 속한 것, 하나님께 구별되어 나아간 것이 진정한 성결입니다.
그리고 이는 본질적으로는 우리가 거룩하고자 해서 또는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해서 얻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결하게 하는 의식과 더불어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성결하지 못한 상태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둠이 빛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성결은 사람이 무언가를 행하는 것에 앞서 하나님께서 먼저 행하시고 사람이 거기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구별해 놓으시는 것이 성결입니다.
옷을 빠는 행위도 그렇습니다. 스스로의 부정함을 씻어내고 스스로를 정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행위도 본질적인 성결의 의미로 볼 때 실제로 사람을 성결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 구별되게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스스로를 정결하게 하는 행위입니다. 그것이 곧 성결은 아닙니다.
지금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모형입니다. 죄인이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는 예수님 안에 있는 깨끗한 의의 옷을 죄인인 우리에게 입히시는 것과 같은 영적 원리이며 그로 인해 우리의 모든 죄가 가려지는 것입니다.
이 복음 앞에 우리가 행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이루신 일을 우리가 믿는 믿음이 다입니다. 그 믿음조차도 우리의 것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거룩한 자녀가 된다는 것은 이 두 가지 의미를 붙잡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성결함에 이를 능력이 없습니다. 아무리 금욕하고 옷을 희게 입는다 할지라도 본질상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거룩함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거룩한 백성, 거룩한 제사장,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일 뿐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거룩함에 이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옷을 빨았던 행위(사실 성경에는 옷을 빠는 것 외에도 스스로를 정결하게 하는 더 많은 것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입니다.
우리 스스로를 정결하게 하는 삶의 행위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빛을 발할 수는 없을지라도 기름을 채운 등불이 빛 가운데에서도 빛을 내는 것처럼 스스로를 정결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 스스로가 부정함에 접촉하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 써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 스스로를 정결하게 하기 위해 옷을 빠는 것과 같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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