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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출애굽기

[말씀묵상] 출애굽기 20:1~17 “간음하지 말라”

by 기대어 보기를 2026. 10. 7.

[출20:1-17]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13 살인하지 말라  
14 간음하지 말라  
15 도둑질하지 말라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일곱 번째 계명은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어렸을 때 이 말씀을 쉽게 외우는 방법이라며 교회학교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던 문구는 ‘칠(7)보단장한 여인을 멀리하라' 였습니다. 일곱 가지 보석으로 꾸민 여성을 멀리하라는 의미인데 지금 생각하면 좋은 표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일곱 번째 계명은 간음에 대한 것입니다. 다섯 번째 계명 이후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져야 할 계명이라는 점에서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내용입니다. 

간음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נָאַף(나아프)]입니다. 그 의미는 ‘간음’ 외의 다른 표현으로 마땅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또 한편으로 이 단어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성적인 죄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단어는 아닙니다. 

이것은 특정한 관계의 경계를 침범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모든 성적 부도덕’을 ‘간음’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간음은 특정 관계 그것은 혼인 관계를 말하며 그것을 깨뜨리는 행위를 말합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세워진 혼인 관계의 신실함을 깨뜨리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렇게 보면 일곱 번째 계명은 그 폭이 부부관계에 제한되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왜 혼인관계였는부터 묵상해보아야 합니다. 혼인은 제도이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매우 근원적인 인간 관계입니다. 이는 하나님 안에서 세워진 사랑과 신뢰, 헌신의 관계이며 이를 통해 가정과 다음 세대가 형성되는 관계입니다.

간음은 그런 관계를 깨뜨리는 행위입니다. 그러기에 이는 혼인관계의 성적인 문제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도 그런 부분을 인지했던 것 같습니다. 간음과 동일시되는 단어가 ‘간통’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형법’이 있었습니다. 

형법 제241조 ‘간통죄’입니다. 이는 배우자가 있는 사람의 간통과 그 상대방의 행위를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했던 조항입니다. 그런데 이 법은 2015년 2월 26일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내려 이후 형법 개정으로 삭제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폐지되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크게 두 가지는 이런 것입니다. 

한 가지는 형벌이 실제로 혼인과 가정을 보호할 수 없다는 것과 또 한 가지는 성적 자기 결정권입니다. 

그러나 법률적으로 간통죄가 폐지되었다 해서 오늘 말씀이 효력을 잃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더 본질적인 부분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성적인 관계 이전에 좁게는 하나님 안에 세워진 가족의 언약의 관계를 깨뜨리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본질적으로는 ‘신뢰의 파괴’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부부관계를 넘어서 다양한 모양의 죄와 파괴적인 현실로 확대됩니다.  

배우자와의 신뢰의 붕괴, 자녀에게 미치는 정서적 위협, 가족의 해체, 경제적인 문제, 정서적인 상처, 거짓말과 은폐, 가정폭력, 성 건강의 문제들입니다. 

그리고 법률적으로 간통죄는 폐지되었지만 외도는 정당한 것은 아니며 민법상 배우자의 부정행위는 재판상 이혼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즉, 형사처벌은 폐지되었지만 민사, 가족법적 책임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오늘날 관계 윤리 안에서 외도는 
- 비밀스러운 이성과의 지속적 연락
- 배우자에게 숨긴 정서적 친밀감
- 성적인 메시지
- 은밀한 만남
- 데이팅 앱을 통한 관계
혼외 관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를 포함합니다. 

그리고 이 계명이 예수님 안에서는 더 크게 확대됩니다. 

[마5:27-28]
27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예수님은 간음을 육체적인 행위만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문제, 욕망의 문제를 드러내십니다. 

그런데 이도 ‘욕망을 느끼는 것 자체가 곧 간음이다’는 식으로 단순화해서도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관계에 대한 태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인은 복잡하지만 다양한 윤리적 요소들을 포함해야 합니다. 

존중, 책임, 진실함, 사랑의 가치관이 그런 것입니다. 이는 타인을 소비하거나 사람에 대해 어떻게 보느냐에서부터 성적인 경계(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신체적 정서적 경계)의 윤리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일곱 번째 계명은 간통죄나 간음과 같은 단편적인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의 관계를 깨뜨리는 행위, 무엇보다 성적인 부분에 있어서의 행위, 개인의 욕망과 탐욕이 경계를 넘어 폭력이 되고 상처를 주고 관계를 깨뜨리는 일들을 말합니다. 

타인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공동체를 깨뜨리지 않고 거룩하고 깨끗하게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하나님 앞에서 내가 맺고 있는 관계들을 얼마나 신실하게 지키고 있습니까?
2. 관계를 지켜내기 위한 신체적, 정서적 경계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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