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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출애굽기

[말씀묵상] 출애굽기 22:16~17 “납폐금”

by 기대어 보기를 2026. 10. 21.

[출22:16-17]
16 사람이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꾀어 동침하였으면 납폐금을 주고 아내로 삼을 것이요
17 만일 처녀의 아버지가 딸을 그에게 주기를 거절하면 그는 처녀에게 납폐금으로 돈을 낼지니라


 

성과 관련된 규례입니다. 어떤 사람이 약혼하지 않은 처녀를 꾀어 동침하였으면 납폐금을 주고 아내로 삼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처녀의 아버지가 딸을 그에게 아내로 주기를 거절하면 그 처녀에게 납폐금으로 돈을 지불하라고 말합니다.

 

납폐금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납폐금이란 [מֹהַר(모하르)]입니다. 이 단어는 부모에게 값을 치르고 아내를 얻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입니다. 신부대금이라고도 할 수 있고 아내를 얻는 값을 아내의 부모에게 드리는 비용입니다.

 

지금의 정서와 윤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대 사회의 이스라엘, 메소포타미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문화권에서 시행되었고 지금도 일부 사회(남아프리카공화국, 나이지리아, 짐바브웨)에서는 유지되고 있는 문화적 관습입니다.

 

납폐금은 반드시 돈으로 지불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물이 될 수 있고 그에 상응하는 다양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야곱은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 라반에게 7년 동안 일하기로 약속을 했었습니다.

 

단편적으로 보면 여성을 예물이나 금전적인 대가를 치르고 아내로 사 오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단지 그런 측면으로만 이해할 것은 아닙니다.

 

즉, 이 제도는 여성의 인권이 낮았기에 그런 관례들이 생겼던 부분도 있지만 반면에 여성의 권익이나 가족,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관련된 제도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본문에는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꾀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꾀어’라는 말은 [פָּתָה(파타)]라는 단어로 열다는 의미지만 유혹하다, 설득하다, 미혹하다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즉, 말이나 어떤 행위로써 처녀를 설득해서 성적인 관계를 가진 것을 말합니다.

 

오늘은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이 이러한 상황에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꾀다’라는 행위의 위법성이나 상대방의 동의에 어떤 위압이 있었는지 등을 파악하고 그런 여지가 없다면 책임을 지지 않기도 합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 있는 여성의 인권을 외면하시지 않았고 더불어 남녀 간의 성적 관계를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라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고대 사회는 남성 중심의 사회였고 그런 문화권에서 여성은 피해자로 남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남성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책임을 회피하거나 외면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성과 그녀의 가족은 심각한 영향을 떠안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서로 합의하거나 설득된 관계라 할지라도 남성과 여성 사이에 있었던 일에서 여성이 피해자로 남지 않게 하시게 합니다.

 

남성에게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납폐금은 벌금이나 자신의 행위로 인한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 책임을 회피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납폐금은 혼인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행위는 단순히 남녀 간의 욕망의 행위로 끝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성경 전체에 흐르는 가치관을 따라가면 성적인 관계는 혼인이라는 관계 안에서 누려야 함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 남성에게 주어지는 책임은 그와 같은 방식으로 혼인을 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와 같은 과정으로 여성이나 그의 부모의 반강제적인 혼인에의 동의를 받아내려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딸을 그 남자에게 주기를 거절할 수 있게 했습니다. 아버지의 거절권이 있습니다. 다만 딸의 의사에 대한 부분은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지점에서 혼인이라는 것이 사람과 사람, 가족과 가족 사이에 이루어지는 중요한 관계임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경우에 납폐금은 금전으로 지불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명기 22장 29절에는 그 금액도 나옵니다.

 

[신22:29] 그 동침한 남자는 그 처녀의 아버지에게 은 오십 세겔을 주고 그 처녀를 아내로 삼을 것이라 그가 그 처녀를 욕보였은즉 평생에 그를 버리지 못하리라

 

은 50세겔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1세겔은 11.4g입니다. 그러므로 50세겔은 570g에 해당합니다.

 

오늘날의 은의 가치로 평가하기보다 당시의 세겔의 가치는 이렇습니다. 고대 근동의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월 1세겔 정도였습니다. 그러므로 50세겔은 대략 평범한 노동자의 4~5년 치 연봉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또한 소가 남종이나 여종을 받아서 사망하게 한 경우 주인에게 지급했던 금액이 은 30세겔이었고, 다윗 왕이 성전을 짓기 위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과 소들을 살 때 지불한 값이 은 50세겔입니다. 대략 오늘날 우리의 기준으로 50세겔은 약 1억 5천만 원 정도에 해당합니다.

 

이와 같은 일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오늘날에는 사랑이라는 이름 혹은 사랑이라는 이름이 없다 하더라도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행한 일들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괜찮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시대는 그렇게 달라지고 있지만 오늘 말씀은 하나님은 두 사람이 동의했다는 사실만으로 성적인 관계에 따르는 윤리적인 책임이 없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남성이 어떤 의도든 주도적인 입장이었을 때 그것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또한 결혼은 상대방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지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말씀 속에 있는 규례나 원칙들은 시대가 바뀐 오늘날에는 그냥 성경 말씀 안에 묻어두어야 할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이라는 의미 안에서 다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은 서로 동의한 사람 사이의 성적 관계가 당사자들의 사적인 선택이라고 결코 말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관점에서도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를 깊이 들여다보게 합니다. 친밀함의 감정 너머에 책임 있는 관계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사랑은 친밀함과 더불어 책임이라는 것이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2. 책임이라는 관점으로 배우자를 바라볼 때 행동해야 할 실천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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