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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출애굽기

[말씀묵상] 출애굽기 22:21~27 “약자의 하나님”

by 기대어 보기를 2026. 10. 23.

[출22:21-27]
21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22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23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24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25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
26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27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


 

 

사회적 약자인 외국인 나그네, 과부, 고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 이방 나그네를 학대하지 말라
  •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채권자 같이 하지 말라
  •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이자를 받지 말라
  • 네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흥미로운 지점은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말씀은 크게 두 가지를 이야기하십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방 나그네였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집트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나그네였고, 외국인이며 이방인이었습니다. 이집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학대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고통의 삶을 살아왔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실 때 이스라엘 백성을 압제했던 이집트는 거의 망하게 되었고 하나님은 그 이집트의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습니다.

 

그 두렵고 떨림을 나타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더 이상 폭정과 압제, 학대 아래 있지 않습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는 속담처럼 우리는 과거의 어떤 순간을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좋은 일일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그런 망각은 우리를 교만하게 하고 타인의 입장에 공감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약자의 입장을 경험해 본 사람은 그 경험을 토대로 또 다른 약자의 입장을 공감해 주면 좋으나 어떤 경우에는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로 약자가 당하는 일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해 버리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방인이며 나그네, 남편을 잃은 과부, 부모를 잃은 고아와 가난한 사람 같은 약자는 언제든지 우리 자신이 될 수 있고, 우리의 과거의 모습이기도 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억을 행동으로 옮기라는 것입니다.

 

아마 우리는 아무도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타인을 해롭게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의 가난을 약점으로 이익을 챙기려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힘든 사람을 더 힘들고 곤란하게 만들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언제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살면서 나의 말 한마디, 행동과 표정, 제스처 하나 때문에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눈물을 흘렸던 일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불편하게 하고 힘들게 합니다.

 

왜 사람들은 누군가를 불편하고 힘들게 할까요? 생각해 보면 이유는 한 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 상대방을 가볍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렇게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할 만한 사람이라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직장 상사나 나보다 힘이 있거나 혹은 포악한 사람에게 우리는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아니 못합니다. 그러니 약자에게 폭력은 흘러 내려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신 것은 과거의 우리도 그러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지만 그때의 우리가 소중했던 것만큼 우리 눈앞에 있는 약자들도 똑같이 소중함을 잊지 말라는 말씀 같습니다. 세상에 존중받지 않아야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금하신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약자들의 하나님이십니다.

  •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라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우리말에 ‘아픈 손가락에 더 마음이 간다’는 말처럼 하나님은 약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부르짖음을 들었습니다. 이집트로부터 받는 학대와 압제로 인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때문에 누군가가 부르짖게 되면 하나님은 그들의 소리를 들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에게는 자비를, 부르짖게 만든 자에게는 맹렬한 심판으로 역사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이유가 우리 스스로를 돌아봄으로 깨달으라는 말씀이라면 두 번째는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깨달으라는 경고입니다.

 

하나님은 내 편이 아닙니다. 부르짖는 약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누군가의 부르짖음이 되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과거에 존중받지 못했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경험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의 마음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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