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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출애굽기

[말씀묵상] 출애굽기 22:29~30 “하나님께 바치라”

by 기대어 보기를 2026. 10. 26.

[출22:29-30]
29 너는 네가 추수한 것과 네가 짜낸 즙을 바치기를 더디하지 말지며 네 처음 난 아들들을 내게 줄지며
30 네 소와 양도 그와 같이 하되 이레 동안 어미와 함께 있게 하다가 여드레 만에 내게 줄지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읽으면 기독교에 대한 편견을 쌓을 만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네가 추수한 것 / 짜낸 즙을 지체하지 말고 바쳐라
- 너의 첫째 아들을 나에게 주라
- 너의 소와 양도 태어난 지 8일이 되면 나에게 주라

특히 첫째 아들을 나에게 주라는 부분에서 하나님은 인신제사를 원하시는 분처럼 보입니다.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희극인이 하던 대사가 생각납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물질이나 재물을 필요로 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또한 인신제사를 받으시는 분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추수한 것을 바치고 장자와 소와 양의 첫 소산을 달라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두 번째 말씀부터 보겠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첫째 아이를 죽여서 제물로 바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출애굽기 13장 2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출13:2]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즉, 이 말씀은 시내산 아래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처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집트에서 이미 선포하셨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장자는 하나님께 속한 존재로 구별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집트의 마지막 재앙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장자를 구원해 생명을 보존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먼저 장자의 생명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바치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죽여서 제물로 바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출애굽기 13장 말씀을 더 읽어 내려가면 이런 내용을 만납니다.

[출13:13]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처음 난 모든 자는 대속할지니라

대속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פדה(파다)]라는 히브리어인데 그 의미는 값을 치르고 되찾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제단에서 희생되는 것이 아니라 속량의 대상입니다.

구체적인 속량의 내용은 민수기 18:15~16절에 나옵니다.

[민18:15-16]
15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생물의 처음 나는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네 것이로되 처음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대속할 것이요 처음 태어난 부정한 짐승도 대속할 것이며
16 그 사람을 대속할 때에는 난 지 한 달 이후에 네가 정한 대로 성소의 세겔을 따라 은 다섯 세겔로 대속하라 한 세겔은 이십 게라이니라

생후 한 달부터 정해진 속전으로 속량, 즉 대속하라는 규정입니다. 그 속량의 값은 다섯 세겔입니다.

그러므로 장자는 하나님께 속했지만 속량을 통해 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소와 양의 첫 새끼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어떤 의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드릴 것이 많아집니다. 수확한 수확물도, 짜낸 즙 즉, 포도주나 올리브오일과 같은 것도 드려야 하며, 생명의 속전 값도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소와 양의 첫 소산도 드려야 합니다.

이 역시도 다음과 같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우선 본질적으로 하나님은 그런 소산물을 필요로 하시지 않습니다. 그것들을 먹거나 냄새를 맡거나 마시거나 하시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의 재화가 필요하신 분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소산과 생명에 대한 권리는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확물의 일부를, 자신들이 수고하고 땀 흘린 재화의 일부를, 가축들의 소산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 속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 말씀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처럼 살았던 이집트에서 선포되었고, 지금은 아무것도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인 광야 한가운데서 선포되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었고, 농사도 지을 수 없으며 동물들이나 가축을 기르기에도 열악한 환경입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의 뒷면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풍성한 결실을 얻게 하고,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시며, 가축들을 기를 수 있는 삶으로 이끄심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아무것도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의 일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일부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생명의 주관자인 하나님을 알고, 부모들의 그와 같은 행위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셨는지를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에 헌금을 하는 것도 이와 같은 신앙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의 삶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얼마나 인정하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봅니다.

특히 자녀의 생명도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더 본질적으로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살아가고 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헌금 생활은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2. 하나님께 받은 것 중에 하나님께 혹은 하나님을 위해 돌려드려야 할 것(달란트)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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