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7:3-7]
3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징과 내 이적을 애굽 땅에서 많이 행할 것이나
4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5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매
6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7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는 팔십 세였고 아론은 팔십삼 세였더라

의문이 생기는 말씀입니다.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징과 내 이적을 애굽 땅에서 많이 행할 것이나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모세가 하나님의 표징과 하나님의 이적을 이집트 땅에서 많이 행합니다. 그런데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표징과 하나님의 이적을 행했을 때 파라오가 믿지 않고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파라오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에 스스로의 악함으로 결정한 일이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문장은 ‘내가’라는 단어로 이야기되었습니다. 즉, 이 모든 일들, 모세의 행함에 대한 파라오의 태도는 하나님께서 파라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심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파라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완악하게 하다는 말은 [קָשָׁה(카샤)]라는 단어인데 이는 힘들다, 무겁다, 굳게 하다 등의 의미입니다. 이는 ‘목이 곧다’와 같은 표현과 같은 것입니다. 마음을 굳히지 않고 자신의 고집을 세우며 아무것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파라오의 마음을 그렇게 하시겠다는 부분이 의문입니다.
먼저 오해하지 않기 위해 정리해야 할 부분들이 있습니다. 파라오의 마음은 부드럽고 유순해서 모세가 행한 이적을 보면 마음을 돌이켰을 것인데 하나님께서 파라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돌이키지 못하게 하셨느냐는 부분입니다.
그런 의문이 생길 만한 부분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모순점들이 생깁니다. 성경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은 결코 사람들이 죄를 짓도록 부추기지 않습니다.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이로서 절대 그런 일을 행하시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존재로 창조하셨는데 파라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는 것은 파라오의 자유의지를 하나님께서 통제하시고 컨트롤하신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파라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복음주의 학자들 사이에 많이 받아들여지는 견해는 하나님께서 파라오의 마음을 확정하셨다는 견해입니다. 파라오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모세와 아론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미 앞에서 그런 태도를 분명히 보여 주었습니다. 확정이라는 말이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데 하나님이 파라오의 그런 마음을 못 박아 버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두어 굳어지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파라오의 자유의지를 제한하지 않았습니다.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을 스스로의 의지가 있었습니다. 듣지 않아야 될 이유는 본인 스스로에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마음, 파라오의 믿지 않는 마음을 그대로 확정시키셨다는 의미입니다. 그의 선택이었고 하나님은 그의 선택을 확증하셨다는 것입니다.
단어가 다르지만 비슷한 표현들이 성경에 있습니다. 그것은 ‘유기’입니다.
[롬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악한 마음을 그 악함대로 내버려 두십니다. 그렇기에 파라오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그 마음을 하나님은 그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파라오는 스스로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파라오의 마음을 선하게 변화시키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나님이 사람이 죄를 짓도록 유기하시고 방조하는 것은 왠지 하나님 닮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정서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끊임없이 들려줍니다. 그 중 하나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입니다. 아마 본문에서 겪는 당혹감은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이미지로부터 온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서 들려주는 것 중 하나는 ‘하나님은 심판자’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악을 판단하고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공의롭고 정의로운 분이시기에 선악간에 판단하십니다. 그리고 죄에 대해서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파라오의 마음의 완악함을 확정하셨다거나 유기하신 것은 다른 말로 파라오의 선택의 결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기도 합니다. 파라오의 완악함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인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사랑에 기대어 파라오의 마음을 돌이킬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해봅니다. 다시 한 번 공감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실제로 그렇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도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파라오에게 하나님의 표징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이적을 행합니다. 한 번만 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많이’ 행하십니다.
표징은 [אוֹת(오트)]라는 것으로 신호입니다. 하나님을 알 만한 신호, 깨닫고 돌이키라는 신호입니다. 이적은 [מוֹפֵת(모페트)]입니다. 이는 아름답거나 장엄한 행위를 말합니다. 역시 표시이며 증거입니다.
즉, 하나님은 파라오에게 하나님을 알 만한 신호도 주시고 표시도 주시고 증거도 보여줍니다. 성경은 오늘 본문의 표현 ‘파라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는 것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그 순간 하나하나가 다 파라오가 돌이킬 기회였고 하나님의 인내이며 참으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부추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제한하시지 않습니다. 또한 성경은 우리는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엄중히 경고합니다. 모든 선택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인가 아니면 어리석은 욕심이나 탐심에 기반한 선택을 할 것인가 사이의 문제입니다.
파라오는 자신의 완악함을 선택했고 하나님은 그의 자유로운 의지에서 비롯된 선택에 대해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그 전에 파라오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인간의 완악함 뒤에서도 신실하심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분입니다.
오늘 우리도 파라오의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우리의 탐심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는 선택과 모든 위기, 모든 선택의 순간마다 우리 옆에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귀를 기울이는 선택의 자리에 있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스스로를 완악함에 내버려 두어 본 경험이 있습니까? 그렇게 했을 때의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2. 완악함의 순간을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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