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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출애굽기

[말씀묵상] 출애굽기 7:8~13 “뱀이된 지팡이”

by 기대어 보기를 2026. 8. 3.

[출7:8-13]
8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바로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말하기를 너의 지팡이를 들어서 바로 앞에 던지라 하라 그것이 뱀이 되리라
10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 앞에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된지라
11 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12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13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모세는 파라오 앞에 섰습니다. 모세의 대언자 역할을 한 아론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파라오 앞에서 지팡이를 던졌습니다.

그 지팡이는 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파라오도 신하들을 통해 현인들, 마술사들을 부릅니다. 그리고 그들도 요술로 모세처럼 지팡이를 뱀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행한 것은 ‘요술’이라고 번역되었는데 그것은 [לַהַט(라하트)]라는 단어로 타오르다, 불꽃이 번쩍이다는 등의 기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신비한 능력이라고도 볼 수 있고 또한 은밀히 행하는 연기, 손놀림으로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기술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번쩍임으로 사람들의 주위를 끌고 그 사이에 빠르고 은밀하게 사람들을 속이는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술’이라는 말보다는 ‘마술’ 또는 ‘트릭’이라는 말이 더 적합합니다.

물론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 목적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방해하고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것이라면 악한 영이 개입한 초자연적 현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그렇다 하여도 이적의 차이는 드러났습니다. 아론의 지팡이가 그 현인들, 마술사들, 요술사들이 만든 뱀을 삼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일의 결과로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의 말에 마음을 더 닫아 버렸습니다. 지팡이가 뱀이 되는 것은 초자연적인 일이었으나 자신들의 신하들도 비슷한 일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모세와 아론이 행한 일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모세와 파라오는 당시에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모세가 처음 하나님을 만났을 때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자신의 지팡이가 뱀이 되는 놀라운 일을 경험했습니다. 그것은 모세에게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고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모세는 그것을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이며 증거라 믿었습니다. 아론 역시도 비슷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세와 아론이 행하는 일들을 보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확실한 표증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파라오 앞에서 그 일을 행했을 때 파라오는 그리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즉시 자신들의 신하를 통해 그런 일을 재현해 보였습니다.

파라오에게는 그런 비슷한 일들에 대한 경험이나 그런 일들을 낯설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궁금한 것은 모세와 아론이 파라오의 요술사들이 자신들처럼 지팡이를 뱀으로 만들었을 때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표적이었는데 그것을 이집트인들도 행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아론의 지팡이가 그 뱀들을 삼켰기 때문에 하나님이 더 강하다며 안심했을까요? 아니면 자신들이 가진 표적에 의심이나 불안한 마음이 들었을까요?

말씀을 읽어보면 이후 모세와 아론은 흔들렸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믿음의 길에 단단히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파라오 앞에 계속 행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떻게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계속 견지할 수 있었을까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은사와 표적,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경험하기를 간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 역시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영적 경험이 주어진다면 더 확실하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와 같은 경험에 우리는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살아오면서 중요한 깨달음과 확신, 성찰은 있었으나 늘 문제는 일상의 나태함이나 습관, 만성화된 삶의 패턴에 묻혀 버립니다.

강렬한 경험도 시간이 지나면 미미해져 버리고 이 세상에는 더 강력한 자극이 훨씬 많습니다. ‘도파민’을 자극하는 지금의 이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신비롭습니다. 표적이나 증거가 눈에 보여야 믿음이 우리 안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이 믿음입니다.

믿음을 파라오처럼 눈에 보이는 표적을 통해 얻으려 한다면 잘못된 접근입니다. 표적은 믿음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모세와 아론,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다시 돌아보면 지팡이가 뱀이 되는 표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믿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 이전에 말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언약이 있었고, 아브라함에서 이삭, 야곱으로 이어진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 약속이 지금 하나님의 시간에 성취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마음 안에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는 그 믿음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말씀 안에 거하며 성령님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을 이끄시고 변화해 나가도록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표적은 사람의 눈을 놀라게 하지만 말씀은 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어떤 영적 체험을 간구했었나요?
2.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3. 어떻게 믿음이 여러분 안에 있게 되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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