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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에베소서

에베소서 6:10~12

by 기대어 보기를 2025. 9. 30.

[엡6:10-12]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 이 문제로 씨름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혈과 육이 씨름이 대상이 아닌 분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일하고 치열하게 살고 있습니다. 하나를 더 가지려면 더 부지런해야 하고 더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좀 나태하거나 잠을 자고 있으면 얻어야 할 것을 얻지 못합니다. 세상은 아무 일도 안 하는 사람에게 많은 것을 절대로 주지 않습니다. 무엇을 하든 그것에 합당한 노력을 한 사람에게 보상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너무 경쟁하기 때문에 공평하게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생활하시면서 기도하는 대부분의 내용이 혈과 육의 씨름입니다.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안타까운 일이 있기 때문에 기도합니다. 이것이 실제적인 우리의 씨름입니다. 그리고 이 씨름만으로도 사실은 버텨낼 자신이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앞에서도 '강건함'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인 생각이 어떻게든 힘을 얻고 살아가는 것 입니다. 낙심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우울해하지 않고 그래도 내일은 더 좋은 일이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힘을 내는 것을 '강건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현실의 우리의 모습인데 말씀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씨름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 씨름의대상이 통치자들이고 권세이고 어둠의 세상의 주관자이고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이라고 말합니다.

말씀은 우리의 씨름의 실체를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싸람의 실체는 사람이 아니다, 경쟁자가 아니다, 원수가 아니다, 먹고사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로 씨름하고 살고 있는데 그것은 먹고사는 문제의 씨름이 아니라 통치자와 권세와 어둠의 주관자와 하늘의 악한 영들과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두 가지 차원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는 오늘 본문에 기록된 그리스도인의 싸움의 대상이 실제로 우리 앞에 그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고 하나는 그리스도인의 싸움의 대상이 우리 내면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먼저, 앞에서 나눴던 것처럼 실제인 통치자들, 실제인 살아있는 권력들,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하는 실제 하는 어둠의 주관자들 그리고 실제하는 하늘의 악한 영들과 씨름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또는 우리의 자녀들이 살아갈 세대는 신앙생활 하기가 더 좋고 평안하지 않을 것입니다. 점점 온전하게 신앙생활을 하는데 여러가지 제약이 따르게 될 것 입니다.

어떤 때가 되면 그 실체를 온 천하에 드러내게 될 것 입니다. 어떤 순간이 되면 정말로 현실적인 통치자와 현실적인 권세와 두렵고 무서운 어둠의 주관자들과 하늘의 악한 영들과 전부를 건 싸움을 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이냐 세상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과거 우리나의 역사만 봐도 신앙의 박해의 현장에서 이와 같을 씨름이 있었습니다. 이 편지를 교회들에게 보내는 바울만 해도 이 씨름의 현장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로마의 통치자와 권세에 붙잡혀 감옥에 갇혀 있었고 그 뒤에는 어둠의 주관자들과 하늘의 악한 영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치열한 씨름의 현장에서 씨름하고 있었고 결국에는 순교했습니다.

그때가 되면 오늘 말씀에 나온 그리스도인의 씨름의 대상은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때에 그 실체와 맞서 싸우고 버텨내기 위한 작은 씨름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에서 이미 우리는 이 씨름을 시작했습니다. 알고 있을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이미 시작된 이 씨름의 실체를 알고 있어야 정말 우리가 믿음과 신앙으로 모든 것을 건 씨름을 해야 할 때 그 씨름을 감당해 낼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군인은 평상시에 열심히 훈련을 한 군인일 수밖에 없듯이 그리스도인이 그때가 되어 씨름을 할 수 있으려면 지금 우리 안에 시작된 이 씨름을 잘 이겨 나가야 합니다.

최근에 누군가와 타투신 경험이 있습니까? 지금 누군가와 갈등을 겪고 계신 일이 있습니까? 혹은 여러분 스스로 고민하고 갈등하고 있는 문제들이 있습니까?

그것이 무엇이고 그것이 누구든지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보면 여러분은 그 문제와 씨름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그 사람과 다투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 문제 안에서 이미 통치지와 권세와 어둠의 주관자와 하늘의 악한 영들과 영적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부부가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가정에 있는 일입니다.

남편은 아내와 싸웠고 아내는 남편과 싸웠습니다. 이유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둘이 싸웠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통해 들여다보면 그 싸움은 단순히 아내는 남편과 싸운 것이 아니고 남편도 아내와 싸운 것이 아닙니다.

아내는 남편과 왜 싸운 것일까요? 살다 보면 다툴일이 많습니다. 남편이 맘에 들지 않는 일을 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아무 일도 없는 상태에서 상대방과 싸우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싸움은 상대방의 행동이나 말 등을 통해 우리 내면에 어떤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시작됩니다.

에베소서 말씀을 나누면서 끊임없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교회에서 세상에서 가정에서 모든 관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칡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듯이 하나님의 자녀는 살아가는 삶의 방향이 정해져 있습니다.

반면에 통치자나 권세 그리고 어둠의 주관제들과 하늘의 악한 영은 그리스도인과 씨름합니다. 그것은 마귀의 간계입니다. 

이 '간계'라고 하는 것은 [μεθοδεία(메도네이아)]라는 것으로 그 의미는 '절차나 방법, 음모, 교활함' 계궤' 등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씨름해야 할 대상의 공통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칡나무라면 마귀의 간계는 등나무입니다.

즉, 자라 가는 방향성이 다릅니다. 마귀의 계기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씨름'이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등'이 생깁니다.

오늘 우리는 잠시 머물다가 떠날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원하는 방향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통치자나 권세 그리고 어둠의 주관자와 하늘의 악한 영이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뻗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마귀의 간계는 반드시 서로 만나고 뒤엉키게 됩니다.

부부의 싸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왜 싸웁니까? 싸움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에베소서 말씀만 읽어도 부부 관계가 어떠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많은 말씀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내들은 남편에게 주님께 순종하듯이 순종하고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을 주신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의 모습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방향입니다. 마치 칡나무가 오른쪽으로 휘감아 자라듯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순종과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부부가 서로 싸우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속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분노를 오래 품고 죄를 지으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퉜습니다. 싸웠습니다. 무엇 때문에 싸웠습니까? 아내의 행동이 맘에 들지 않았습니까? 남편의 말에 기분이 상했습니까? 아내가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았습니까? 남편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았습니까?

부부는 그렇게 싸웠지만 부부는 서로 싸울 대상이 아니라 순종과 사랑의 관계 안에서 연합해야 합니다. 이유야 어떻든지 부부는 싸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살다 보면 싸울 수밖에 없지요? 말씀은 우리에게 그런 싸움이 일어날 때 그 싸움의 실체를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다툼이 아닙니다. 그런데 내면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문제에는 '마귀의 간계'가 들어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자꾸 아내가 혹은 남편이 나를 무시한다고 느껴지고, 권위가 짓밟혔다고 느껴지고, 상대방이 나를 지배한다고 느껴지고, 나만 손해 보고 있다고 느껴지게 됩니다.

부부사이에 가치관의 차이가 있고 의견의 차이가 있고 취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생각의 충돌은 일어날 수 있지만 그것이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게 될 이유는 없습니다. 사랑 안에서 수용하고 이해하고 존중하고 포용하고 같이 맞춰주고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그런데 통치하려는 마음, 힘을 행사하려는 마음, 악한 마음, 악한 영, 세대마다 사람들 안에 파고들어 나타나는 폭력성이나 분노, 음란함과 비통함, 우울함 과 같은 것들이 우리 내면 안에 차고 들어와 이미 우리 속에서 이 갈등이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싸움은 남편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남편도 아내도 서로서로 그리스도인의 싸움의 실체인 하나님의 뜻과 마귀의 간계로 인해 갈등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은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라
그렇게 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로
우리는 남편과 아내 혹은 내 이웃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간계인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1. 최근 갈등을 겪은 일은 무엇입니까?
2. 그 갈등이 만들어낸 결과가 성경이 말하는 관계와 어떻게 달랐습니까?
3. 갈등으로 인해 후회하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회복해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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