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번에는 부모들에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엽게 하다'는 말은 [παροργίζω(파로르기제테)] 라는 말로 명령으로 말해서 화나게 하거나 사람을 자극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은 저희 가정에서 자주 일어나는 모습입니다. 제가 아이에게 무언가를 지시할때 벌어지는 풍경입니다. 아이가 말씀처럼 부모님의 말씀에 잘 순종하면 좋은데 아이라도 사실 하기 싫은 것은 하기 싫고 귀찮은 것은 귀찮습니다. 그리고 어른보다 연약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지시하면 잘 안듣습니다. 그럼 그때부터 부모의 억양과 톤이 달라집니다. 명령형으로 바뀌고 또 고압적인 어조로 말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엄마 미워, 아빠 미워' 하며 짜증을 내거나 때론 울어버립니다.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서는 그래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후회할 만한 방법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강압적이고 명령적으로, 자녀의 감정이나 기분이나 생각을 무시하고 부모의 권위를 가지고 무조건 해야 한다는 식으로 강요해 버릴 때가 많습니다.
사실 그게 쉽습니다. 자녀를 다 이해시키는 것은 사실 어렵습니다. 자녀가 뭔가를 물어볼때 그것을 차근차근 잘 설명해 줘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귀찮아서 대충 이야기하고 자녀가 계속 물어보면 자녀에게 화를 내 버립니다. 저도 그렇게 많이 했습니다. 반성합니다.
최근 저의 아이는 부모는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말을 합니다. 아니 그런 생각이 굳어져 버렸습니다. 가령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하고 있을때 아이가 말을 걸어올 때가 있습니다. 주방에서 일을 할 때 아이가 지나가면서 한마디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미안~”이라는 말을 하며 지금은 바쁘니, 지금은 중요한 일을 하니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합니다. 그래놓고는 잊어버립니다. 그런 순간들이 쌓여서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부모가 되어 버리고 어쩌면 아이에게 진짜 필요한 말을 해 주어야 할 순간을 놓쳐 버립니다.
말씀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단순하게 자녀에게 명령형으로 이야기 하지 말라, 이유 없이 무조건 적인 순종을 강요하지 말라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부당하다는 느낌, 강압적이라고 느끼고 억지라고 느낄때가 있습니다. 그런 감정을 갖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어떤 상황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되지 못했을 때 그런 감정을 느낍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충분한 대화 입니다. 자녀들과 대화입니다. 저도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결국에는 우리가 '대화'를 하지 못해서 상처받고 오해하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부모와 자녀간에 대화는 너무 중요합니다. 충분한 대화, 자녀가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통로는 대화입니다. 부모도 자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통로도 대화입니다.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녀에게 주님의 교훈과 주님의 휸계로 양육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으로 자녀를 양육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럴 수 있습니다.
디모데 후서 3장 16-17절 말씀을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살마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우리와 우리 자녀를 양육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을 바르게 하고 의롭게 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할 수 있습니다. 죄에 빠져 있던 사람에게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줍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처럼 자녀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자녀들에게 들려지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실때 ’권위‘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7:28-29]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권위란 [ἐξουσία(엑수시아)] 라는 단어로 힘, 권위, 능력, 보증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ἔξεστι(엑세스티)] 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합당하다, 가능하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종합해 보면 권위란 실제로 그 말씀이 그렇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힘이 있고, 능력이 있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말씀에 권위가 있다는 것은 그런 의미 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들을 가르칠 때 그 말씀이 자녀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권위가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목소리를 크게 하고 무섭고 엄중한 톤으로 가르치라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 말씀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것은 부모인 우리가 먼저 주의 교훈과 훈계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데로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자녀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을 자녀에게 보여주면서 자녀에게 순종을 가르쳐야 합니다.
결국에는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 입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예수님 안에서 부모님을 대할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예수님 안에서 자녀를 양육해야 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평소에 자신이 자녀를 대하는 태도는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2. 주의 교훈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필요한 변화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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