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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46:1~7 “함께 하시는 하나님“

by 기대어 보기를 2026. 5. 25.

[창46:1-7]
1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  
2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4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5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날새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바로가 그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에 자기들의 아버지 야곱과 자기들의 처자들을 태우고  
6 그들의 가축과 가나안 땅에서 얻은 재물을 이끌었으며 야곱과 그의 자손들이 다 함께 애굽으로 갔더라  
7 이와 같이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곧 그의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이스라엘 즉, 야곱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브엘세바에 이르러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밤에 야곱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 나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라  
- 이집트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다  
-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다  
-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겠다  

본문은 하나님을 표현할 때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보다 야곱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에서부터 이삭 그리고 야곱으로 이어진 믿음의 계보를 드러낸 표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사의 연대기를 보여주는 표현이지 아버지의 믿음이나 아버지의 아버지의 믿음이 나의 믿음을 대변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이스마엘이나 에서도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진 핏줄이지만 그들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반응하며 살아가지 않았습니다.

결국 지금의 내 자신이 하나님과 어떤 믿음의 관계를 이루어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삭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또 다른 의미로 이렇게 보입니다. 야곱이 자신의 아버지 이삭이 거주했던 브엘세바에 이르렀습니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과정에 지나게 되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때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생각했고 어쩌면 이삭이 쌓아놓았던 제단을 찾았거나 아니면 이삭이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던 장면을 기억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추억과 더불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그 장면이 그때의 야곱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하는 요인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렇기에 한 사람의 신앙은 하나님과의 개별적인 관계지만 또 부모의 신앙과 삶은 자녀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는 오늘 우리의 신앙과 삶의 태도가 자녀들에게 기억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어느 순간에 지금의 야곱처럼 노년에 모든 가족을 이끌고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과 같은 큰 일을 결정하고 실행할 때 아버지 이삭을 추억하며 이삭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것처럼 야곱도 희생의 제사를 드리게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이 순간 우리 자신이 가족들에게 어떤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이집트로 가는 것을 안심시키고 있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만난다는 기쁨도 있었겠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저 역시도 고민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족의 정을 생각하면 요셉을 만나는 것은 너무나 기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버선발로라도 뛰어가고 싶을 일입니다.  

그런데 그냥 잠시 만나거나 만나서 요셉과 함께 돌아오는 여행이 아닙니다. 이집트로의 이주입니다. 요셉은 이집트에서 성공했고 총리라는 엄청난 직책을 얻었습니다. 아마 어떤 관점으로 보면 요셉 때문에 남은 인생을 행복하고 평안하게 누릴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 묵상해보는 이 고민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하는 고민입니다. 신앙의 문제입니다.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받는 존재입니다. 요셉이 오랜 세월 이집트에서 지내면서 이집트인이 되어 버리지는 않았을까? 하나님이 아닌 이집트의 우상을 섬기고 있지는 않았을까? 또 그 이집트에 가서 살게 되면 믿음이 부족한 자녀들이 그곳에 동화되어 신앙 없는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하나님이 머물며 살아가기를 원했던 땅,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땅은 이곳 가나안 땅인데 지금 요셉이 이집트에서 성공했다고 이렇게 가족들을 다 데리고 그곳으로 내려가는 것이 맞을까?

믿음을 떼어놓고 생각해보면 지체하지 않고 요셉에게 가는 선택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생각해보면 지금 이 상황은 유혹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힘들어도 가나안 땅에 머물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을 들려주시지만 만약 그것을 모르고 있는 상황에서의 야곱의 입장이라면 분명 고민이 되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좋은 일이 눈앞에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 어떤 의미인지를 한 번 더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고민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답을 찾아갈 수 있을까요?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오늘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들려주신 말씀 속에서 해답을 찾아가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이 말씀에서 핵심 단어는 ‘함께’입니다. 함께를 뜻하는 히브리어는 [עִם(임)]입니다. 이 단어는 부사 또는 전치사로 함께, 동시에, 바로 옆에, ~가운데, ~에도 불구하고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인생 가운데 함께 계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야곱과 함께 있고, 야곱이 행하는 모든 일에 옆에 있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함께 있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을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오늘 야곱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함께 있으신다는 것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언이지만 동시에 이것은 관계적인 일입니다. 즉 우리도 하나님 옆에, 곁에, ~하는 동안에, ~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되면 장소나 문화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나 우리의 내면이 하나님 곁에 있을 때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지금의 요셉이 이집트의 문화와 인간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했던 이유가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도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동행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의 태도로 살아가면 환경이 바뀌고 상황이 바뀌어도 버텨내고 이겨낼 힘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여러분의 인생에서 두려움과 걱정이 있었던 선택은 무엇입니까?  
2. 지금 주저하고 망설이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3.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말씀이 여러분에게 들려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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