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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46:28~30 “죽어도 족하도다”

by 기대어 보기를 2026. 5. 27.

[창46:28-30]
28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다 고센 땅에 이르니
29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의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매
30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야곱은 이집트의 고센 지역으로 갔습니다. 요셉도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이합니다.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야곱은 죽은 줄만 알았던 요셉을 만났을 때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라는 말을 합니다. 

연로한 야곱이 이제 요셉을 봤으니 인생에 남아 있는 한이 없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야곱의 말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느낍니다. 

야곱은 이제 죽어도 족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죽겠다’는 의미의 동사 ‘무트(מוּת)’가 ‘아무타(אָמוּתָה)’ 형태로 사용되었고, 여기에 ‘이번에는’, ‘이제야’라는 의미의 ‘하파암(הַפָּעַם)’이 붙어 “이제는 죽어도 된다”는 의미를 형성합니다. 그래서 이는 “이번에는 내가 죽겠다”, “이제 나는 죽어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말 그대로 야곱은 이제 인생에 여한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요셉이 살아 있으니 나는 죽어도 된다는 의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우리를 살리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들려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를 살릴 수 있다면 죽어도 된다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된 십자가의 대속입니다. 

야곱이 얼마나 요셉을 사랑했는지를 느낄 수 있고, 이를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야곱이 ‘죽어도 족하다’는 이 말은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야곱이 ‘죽겠다’는 말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창37:35]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야곱이 요셉의 피 묻은 옷을 보고 슬픔과 비통 속에 한 말입니다. ‘스올’로 내려가겠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שְׁאוֹל(셰올)]이라는 말로 죽은 자의 세계를 말합니다. 

야곱은 이 말을 베냐민을 데리고 이집트에 가야 할 때에도 했습니다. 요셉을 잃었을 때 죽겠다는 말을 하였고, 베냐민을 잃게 될 것 같은 두려움 속에서도 죽겠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죽겠다는 말과는 완전히 다른 죽음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요셉을 잃었을 때에는 깊은 비통함과 슬픔을 떠안은 상실과 절망의 죽음을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평생 매여 있는 두려움인 죽음입니다. 비통함과 고통, 아픔, 슬픔, 절망 등 우리를 저 깊은 밑바닥으로 던져 넣어 버리는 그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요셉이 살아 있을 때 말한 이제 죽을 수 있다는 말은 정반대로 소망과 성취의 의미를 담은 죽음입니다. 더 이상 슬픔이나 고통, 비통함이나 절망이 지배하는 것에 대해서 죽을 수 있다는 의미의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가진 이중성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의 모든 고통과 슬픔과 절망, 두려움을 모두 짊어진 죽음이지만 동시에 우리에게는 구원의 소망이 되는 죽음이기도 한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우리에게 죽음의 의미는 그렇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전히 두려움은 있고 상실에 대한 슬픔과 아픔은 있겠지만, 우리를 살리시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신 죽음 안에서 우리는 끝이 아닌 시작을 살아가게 되는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야곱의 말을 다시 한 번 들어 봅니다. 그리고 그 말은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대신 죽음으로 우리가 살게 되었으니 죽을 수 있다는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십자가 안에서 우리를 살리신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충만하며 우리를 지나 우리가 사랑해야 할 사람들에게로 흘러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여러분이 기억하는 부모님의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2. 여러분이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3. 예수님의 사랑의 통로로 여러분의 삶이 쓰인다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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