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6:31-34]
31 요셉이 그의 형들과 아버지의 가족에게 이르되 내가 올라가서 바로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가나안 땅에 있던 내 형들과 내 아버지의 가족이 내게로 왔는데
32 그들은 목자들이라 목축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왔나이다 하리니
33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34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
[창47:1-6]
1 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2 그의 형들 중 다섯 명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3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4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양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곳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
5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6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거주하게 하되 그들이 고센 땅에 거주하고 그들 중에 능력 있는 자가 있거든 그들로 내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

요셉은 형제들에게 파라오를 대면할 경우에 대한 대비를 시킵니다. 요셉의 계획은 이렇습니다.
요셉은 파라오를 대면할 때 자신들을 목축을 하는 사람이라 소개하라고 합니다. 실제로 목축을 주업으로 삼고 있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을 바탕으로 비옥한 토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대대적인 농사가 가능했고 풍족한 농작물은 나라의 부의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집트인들은 농사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축을 기르는 일들은 가증히 여깁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얻는 유익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집트인과 떨어진 곳에서 터를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과 형제들이 고센 땅에 터를 잡고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켜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의 구별됨입니다. 만약 요셉의 형제들이 이집트인과 어울려서 살게 되면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백성이 지녀야 할 신앙과 삶의 태도는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어쩌면 히브리인이 아니라 이집트인이 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이 이집트인들과 공간적으로 분리된 장소에서 독자적인 문화를 이루어가며 살아갈 수 있도록 계획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요셉이 다시 보이는 장면입니다.
요셉은 무엇이 중요한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고센이 아닌 다른 곳에도 거주할 수 있었습니다. 파라오는 요셉을 아껴서 요셉의 형제들에게 이집트의 좋은 땅 중 원하는 곳에 거주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누구나 욕심이 있기에 기회가 왔을 때 좋은 것을 차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 눈에 좋은 곳은 다른 사람의 눈에도 좋은 곳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이집트의 좋은 곳에 거주하려 했다면 이집트인과 가깝게 지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과거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선택이 떠오릅니다. 롯은 온 세상을 둘러보고 자신의 눈에 좋은 곳을 찾아 떠났습니다. 그곳은 소돔과 고모라가 있는 땅이었습니다. 죄악의 도시로 알려진 곳이지만 인간적인 관점에서 그곳은 아름답고 풍족한 자연환경이 갖추어져 일찍이 문명이 들어선 곳입니다.
반면 아브라함의 기준은 달랐습니다. 눈에 보이는 좋은 곳이 아니었습니다. 롯이 선택하지 않은 반대 방향이 아브라함의 기준이었습니다. 그것은 환경을 보고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좋은 곳의 기준은 하나님입니다.
고센이라는 지역이 어떤 곳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곳은 이집트인과 떨어져 지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요셉은 단순히 거주지를 마련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형제들이 이집트 문화 속에 완전히 흡수되지 않도록 고려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관점으로 요셉을 돌아보니 요셉이 이집트인들과 살아오면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잃지 않았던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요셉은 노예 생활을 했고 상당한 시간 동안 감옥에서 지냈습니다.
이집트인들의 문화와 그 풍요로운 삶을 경험하며 즐길 수 있는 여건이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반면에 고독했고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환경은 오히려 광야와 같아서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붙잡게 했던 것 같습니다.
감옥이나 종살이는 인간적으로 볼 때 비참한 일이지만 역경 속에 더욱더 가치 있는 믿음을 지켜냈다는 점에서는 고난이 축복이라는 말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는 오늘도 어떤 선택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은 다른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입니다. 세상에서 얻는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신앙과 믿음의 성장이 그리스도인에게 더더욱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묵상을 위한 기도]
- 만약 거주지를 옮긴다면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시겠습니까?
- 어떤 일들을 결정할 때 고려해야 할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 하나님을 우선순위로 두고 결정했던 일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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