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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45:21~24 “죄가 드러날 때”

by 기대어 보기를 2026. 5. 22.

[창45:21-24]  
21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그대로 할새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들에게 수레를 주고 길 양식을 주며  
22 또 그들에게 다 각기 옷 한 벌씩을 주되 베냐민에게는 은 삼백과 옷 다섯 벌을 주고  
23 그가 또 이와 같이 그 아버지에게 보내되 수나귀 열 필에 애굽의 아름다운 물품을 실리고 암나귀 열 필에는 아버지에게 드릴 곡식과 떡과 양식을 실리고  
24 이에 형들을 돌려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당신들은 길에서 다투지 말라 하였더라  




파라오의 명령에 의해 요셉은 형들에게 수레와 양식, 그리고 옷을 한 벌씩 선물하고 베냐민에게는 은 300과 옷 다섯 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인 야곱에게 수나귀 열 필에 이집트의 아름다운 물품을 실리고, 암나귀 열 필에는 야곱에게 드릴 곡식과 떡과 양식을 실었습니다.  

그렇게 요셉의 형들은 수레와 곡식, 물품과 동물들을 이끌고 야곱에게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떠나는 그들에게 요셉이 “길에서 다투지 마라”는 말을 합니다.  

직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집으로 가는 길에서 서로 다투게 될까? 다툴 이유가 무엇일까? 혹시 베냐민에게 옷을 다섯 벌을 준 것 때문에? 이집트의 진귀한 물품과 곡식, 떡들 때문에? 아니면 다툴 만한 이유가 있을까? 여러 생각을 해 보지만 다툴 만한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이런 말을 왜 했을까요?  

요셉이 한 말의 원문은 이렇습니다. [אַל־תִּרְגְּזוּ בַּדָּרֶךְ(알-티르게주 바다레크)]입니다. 이는 길에서 격해지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좀 더 풀어보면 감정적으로 충돌하지 말라, 흥분하거나 분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조금 생각해보니 요셉이 그런 말을 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45장에 기록된 내용은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이집트의 총리가 자신들의 동생 요셉이었고, 이집트의 파라오는 자신들을 환대하고 더 나아가 기근의 시대에 온 가족들이 살아갈 땅까지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거기에 아름다운 옷과 충분한 양식, 훌륭한 수레, 온갖 이집트의 진귀한 선물들까지 얻었습니다.  

엄청난 기쁨과 감사함에 감격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면 분명 베냐민을 간절히 기다리는 아버지 야곱에게도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베냐민도 무사하고 시므온도 무사하고 거기에 온갖 선물과 환대에 대한 소식은 야곱을 기쁘게 하기에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설명되고 이해되기 위해서는 결코 피해갈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에게 요셉은 이미 오래전에 들짐승에 찢겨 죽은 아들입니다. 평생 가슴에 깊은 슬픔으로 묻어둔 상처입니다. 요셉이 살아 있다는 것은 야곱에게는 굉장한 위로가 되겠지만 문제는 그 소식을 전하는 당사자인 야곱의 아들들입니다.  

그들은 요셉을 죽이려 했었고, 이집트에 팔아넘기는 큰 죄를 평생 묻어두고 아버지를 속이고 스스로 외면한 채 살아왔었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자신들의 죄를 숨기고 싶었겠지만 이제는 감출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요셉이 살아 있는 이상 그 감추었던 진실은 반드시 드러날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요셉의 형들에게는 가장 큰 두려움이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죄가 아버지 앞에서 밝혀질 때 벌어질 일이 두렵고 걱정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툴 수 있습니다. 그때의 일들을 이야기하며 누구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서로 책임을 떠밀고 다투고 싸울 수 있습니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베냐민에게 형들의 그런 모습은 또 충격이 되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그래서 다투지 말라고 했습니다. 요셉이 그렇게 말한 이유를 한 번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형들의 그 불안한 마음을 안심하게 하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과거의 그 일로 서로 다투지 않기를, 그 일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겠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그런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이 장면은 야곱의 아들들에게 있었던 하나의 사건이지만 우리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기근으로 인해 전전긍긍하다 드디어 생명을 보존할 은혜를 입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거기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고 그 뒤로는 안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부끄럽고 추악한 죄를 다시 마주하고 그것이 낱낱이 밝혀지게 되는 부끄럽고 두려운 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죄를 묻지 않고 덮어두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덮어주고 위로하는 그 마음은 자신들의 죄의 결과로 팔아넘겨진 희생자이며 대속자의 마음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가 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모든 것이 드러날 부끄러운 제 자신도 발견합니다. 너무 부끄러워서 숨고 싶어지는 그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의의 옷을 입혀주며 불안해하거나 떨지 말라 말씀해주시는 장면 같습니다.  

오늘 요셉을 통해 우리의 죄와 부끄러움을 대신 당하시고 대신 의의 옷을 입혀주시는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요셉처럼 우리도 누군가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위로의 능력이 있는 말과 행동을 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감추고 싶었던 부끄러운 일들이 드러날 위기를 경험해 보신 일이 있습니까?  
2. 어떻게 하셨습니까?  
3. 잘못을 인정한 이후 경험한 것은 무엇입니까?  
4. 누군가가 우리의 잘못을 덮어준 경험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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