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9:20]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8. 아셀
아셀은 야곱의 여덟 번째 아들이며 레아의 여종 실바가 낳은 둘째 아들입니다. 갓의 동생입니다.
레아는 실바가 아셀을 낳았을 때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라고 말했고 그 이름을 ‘아셀’이라고 지었습니다.
아셀은 [אָשֵׁר(아세르)] 행복한, 복된, 형통한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걸까요? 아셀에 대한 야곱의 예언은 축복 같습니다.
-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후대에 아셀지파가 분배받는 땅은 가나안 북서쪽의 해안지대입니다. 그곳은 비옥한 땅이어서 올리브, 포도와 더불어 곡물 생산에 유리한 곳입니다.
이로 인해 아셀지파는 풍부한 식량 자원을 소유했고 풍요로움을 누리게 됩니다.
모세도 훗날 아셀을 축복할 때 비슷한 말을 합니다.
[신33:24] 아셀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아셀은 아들들 중에 더 복을 받으며 그의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의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
발이 기름에 잠긴다는 표현처럼 아셀지파는 풍요로움을 소유하게 됩니다. 마치 왕의 수라상처럼 그 풍요로움을 누리고 또 누군가에게 왕의 수라상처럼 풍성함을 공급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기름진 풍요로움은 누구나 복이라 생각합니다.
반면 아셀지파는 물질의 풍요로움을 누리지만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하게 됩니다.
그 땅에 대한 정복이나 가나안 거민을 몰아내는 문제는 여러 가지 입장이 맞물려 있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가나안 사람들의 문화에 동화되기 쉬운 환경을 만든 것이 됩니다.
그것은 단지 문화의 문제가 아니며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문제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끊임없이 행했던 것이 가나안의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영적 순수성을 잃어버리는 일이었습니다.
가나안인에게 경제적 풍요는 우상 숭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가나안인들은 바알이나 아세라와 같은 우상들이 풍요로움을 가져다준다고 믿었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들의 생각과 신앙을 따라 믿었던 것입니다.
아셀지파는 복을 받은 지파라 할 수 있습니다.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소유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볼 때 그 풍요로움 안에서 가나안 문화와 타협하고 살아가면서 영적 순수성을 상실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진짜 복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을 뜻하는 단어로 대표적인 것은 [בָּרַךְ(바라크)] 즉, 무릎을 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무릎을 꿇는 인격적 관계 안에 있는 것이 진정한 복입니다.
아셀지파의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묵상하게 됩니다. 물질의 풍요로움을 위해 세상과 타협하고 어울리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영적인 순수성을 위해 분별하며 구별된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우리는 아셀 지파의 사람 중 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안나’입니다. 선지자입니다. 그녀는 오랜 세월 과부로 지냈습니다. 그녀는 84세가 될 때까지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금식하며 기도하며 살다가 정결례를 치르러 온 예수님을 만난 여인입니다.
야곱의 예언에 의한 아셀지파는 물질의 풍요로움을 가진 반면 세상의 문화와 가치가 잔존해 영적 순수성을 지켜내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그 영적 순수성을 지켜낸 사람들이 있다. 노년이 되어서도 메시아를 기다리며 소망의 끈을 놓치지 않아 결국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둘 사이 어디쯤 있습니다. 그리고 선택을 해야 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모두가 아셀의 길을 걸어가는 시대지만 안나와 같은 길 위에 서 있기를 기도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 세상과 타협함으로 경제적인 이득을 얻을 기회가 있었습니까?
-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결과를 얻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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