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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50:1~14 "야곱의 장례"

by 기대어 보기를 2026. 6. 18.

[창50:1~14]
1 요셉이 그의 아버지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고
2 그 수종 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하매 의원이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3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으로 처리하는 데는 이 날 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
4 곡하는 기한이 지나매 요셉이 바로의 궁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원하건대 바로의 귀에 아뢰기를
5 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 놓은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 하라 하였더니
6 바로가 이르되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 올라가서 네 아버지를 장사하라
7 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8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
9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그 떼가 심히 컸더라
10 그들이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울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버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애곡하였더니
11 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이르되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곧 요단 강 건너편이더라
12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그를 위하여 따라 행하여
13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14 요셉이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꾼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


 

야곱이 죽었습니다. 요셉이 장자는 아니지만 아버지 야곱의 장례를 주관합니다. 이는 요셉이 실질적인 장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에 의한 야곱의 장례는 이집트의 장례 문화를 따르고 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얼굴에 울며 입을 맞추고 애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수종 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향 처리를 합니다.

 

이 기간은 40일이 걸렸습니다. 이는 이집트에서 미이라를 만드는 기간입니다.

 

고고학을 통해 알려진 미이라의 과정은 간, 위, 장, 폐 등의 내장을 제거하고 향품과 방부제로 시신을 처리합니다.

 

여기에는 몰약과 계피와 향유가 들어갑니다. 이 재료 중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몰약입니다.

예수님과 관련해서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이 준 선물 중 하나가 몰약이고,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당하실 때 몰약을 탄 포도주를 마시게 하려 했으나 거절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으신 이후 니고데모가 가져온 것이 몰약입니다.

 

야곱은 몰약과 계피와 향유로 방부 처리가 되었고 마지막으로 천연 소금으로 몸의 수분을 완전히 제거했습니다. 그리고 아마포로 온몸을 감습니다.

 

이렇게 하는 기간이 40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장례 절차는 이집트의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왕이나 귀족 등 아주 중요한 사람에게 행해지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40일 외에 야곱의 죽음으로 인해 70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이 선포됩니다. 야곱은 왕이 아니지만 요셉으로 인해 국가적 예우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 요셉은 파라오에게 야곱의 장례를 허락받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유언대로 가나안 막벨라 굴에 장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파라오는 이를 허락하였고 거대한 장례 행렬이 이집트에서 나와 가나안까지 이어집니다.

 

그 행렬은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마당에 도착해서 7일 동안 애곡하고 막벨라 굴에 매장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이런 표현이 어울릴까 생각되지만 성대하게 치러졌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 국가장으로 치러졌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가나안 사람들은 이집트 사람의 큰 애통이라 일컬었고 그 땅의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할 정도였습니다.

 

한 사람의 삶을 알려면 그의 장례식에 누가 오는지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장례식의 모습이 그를 평가하는 하나의 척도이며 인생의 지혜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야곱은 성공한 인생입니다. 왕도 아니었지만 한 나라의 국장으로 치러질 만큼 대단한 장례식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장례를 보면서 야곱을 칭찬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것으로 인생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사실 야곱은 막벨라 굴로 돌아오게 해 달라는 유언이 아니었다면 이집트의 위대한 건축물인 피라미드에 안치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곳에 안치되는 것이 더 영광스럽고 의미 있는 것이라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그 땅,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그 장소, 아버지 이삭이 있는 그 장소를 선택했습니다.

 

세상 아무리 좋고 화려한 무덤이 있다 하더라도 야곱이 간절히 원했던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땅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진짜 훌륭한 장례는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 어디에 봉안될까도 중요하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야곱처럼 화려한 장례를 치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가장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죽음과 장례는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2. 여러분의 장례는 어떻게 치러졌으면 좋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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