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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50:18~19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by 기대어 보기를 2026. 6. 20.

[창50:18-19]
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자신들의 과거의 잘못을 고백하며 요셉에게 용서를 구하는 형들을 향한 요셉의 말이 마음을 울립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부당함과 억울함이 많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주인공이 모든 역경을 이겨 내고 원수에게 철저하게 복수하는 장면을 기대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는 '복수'라는 말이 '사이다'라는 말로 통하는 것 같습니다. 복수를 하는 그 장면에서 가슴에 맺힌 무언가를 시원하게 뚫어내는 해소감이 있어 그것을 '사이다'라고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인 것 같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용서를 구합니다. 아니, 살려 달라고 애걸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아버지 야곱 때문에 하지 못했던 분풀이를 이제는 시원하게 할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복수, 곧 죄와 악행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원수와 원한, 부당함과 악함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시94:1]
여호와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어 주소서

 

원수는 하나님이 갚으십니다. 세상에 있는 부도덕함과 부당함, 죄악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시며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고통을 호소하고 억울함을 토로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것도 우리이고 부당함을 당한 것도 우리인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수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여전히 복수는 하나님께서 갚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우리 사회도 이와 같은 원리로 죄악이나 억울함 등의 부당함을 처리합니다. 하나님은 개인의 복수를 금하시지만 악을 방치하지 않으시며, 공동체의 질서를 위해 법과 권위를 세우셨고 그것을 통해 정의를 구하게 하셨습니다.

 

그 원리 안에서 우리 사회는 개인의 사적 복수를 인정하지 않으며, 모두를 보호하고 지켜 주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공적 권력이 모든 부당함과 억울함에 대해 심판합니다.

 

그러나 이는 언제나 피해를 입은 당사자에게는 끝까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억울함이 가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겪은 어려움과 고통에 대한 보상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복수를 허락하지 않으실까요? 복수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레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원수를 갚지 말고,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될 듯하지만 감정적으로는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용서가 되지 않는데 어떻게 용서하고, 심지어 어떻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물론 이에 대해 들려줄 수 있는 말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부당함과 억울함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원수를 갚지 말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첫 번째 이유는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시기 때문이며, 두 번째는 우리의 사적 복수가 또 다른 죄를 낳기 때문입니다.

 

이미 시므온과 레위를 통해 사적 복수의 끔찍한 결과를 우리는 보았습니다. 우리의 복수에는 감정이 들어갑니다. 그 감정은 공평과 정의, 공정함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적 복수는 또 다른 죄를 만듭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죄에 넘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억울함을 당한 이에게 복수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감정이 없는 분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며 우리의 아픔과 고통에 진노하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복수와 분노의 감정에 쓰러져 또 다른 죄를 만들어 내고,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 내는 악순환을 결코 원하지 않으십니다.

 

요셉은 이야기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요셉의 이 고백이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부당함과 억울함,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분노의 감정으로 우리의 내면이 황폐해지지 않기를 원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공의를 신뢰하며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하나님께서 억울함을 풀어 주셨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습니까?
  2. 죄나 잘못된 일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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