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50:20-21]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요셉의 대미를 장식하는 말입니다. 아름답다, 훌륭하다는 등의 수식어를 가져다 붙일 수 있는 말이며 기독교 신앙의 정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고결한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말이기도 합니다.
요셉은 형들로부터 해를 당했습니다. 해란 [רַע(라)]로써 나쁘고, 사악하고, 해로우며 잘못된 것입니다. 요셉은 생명의 위협을 받았고 인생의 밑바닥으로 떠밀려 버렸습니다.
배신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 뒤에 남는 것은 복수의 감정과 절망입니다. 그것을 경험한 사람에게 자신에게 그런 상처를 준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정말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생깁니다.
어떤 일에는 사람은 진정으로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요셉이 형들을 용서했지만 형들이 사랑스럽다거나 고마움이나 감사함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우리의 용서는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용서에 머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사건은 용서하지만 사람을 감정적으로도 진정 용서하고 미움을 넘어 사랑하기까지는 이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니 예외의 경우가 있습니다. 먼저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입니다. 악하고 나쁜 일을 행했어도 사람은 그것 때문에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않거나 증오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스스로를 혐오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스스로에게 관대합니다. 다른 말로 자신을 아끼고 돌봅니다. 그러기에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자며 살아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타인을 사랑하는 것을 자기 자신을 사랑함같이 하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예외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부모로서 살아가다 보니 자녀에게 그렇게 됩니다. 자녀가 잘못을 하고 마음을 아프게 하더라도 결국은 사랑하는 마음이 차오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먼저이고 더 크면 용서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가족이라는 공동체,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하나님을 이해하는 통로 같습니다. 하나님을 이해하고 알아갈수록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됩니다.
요셉이 형들을 용서하고 심지어 형들의 자녀를 기르겠다는 그 마음의 근본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신 그 사랑이 오늘 요셉의 고백 속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 비난과 조소, 물리적 폭력과 멸시를 주었으나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그들의 죄의 용서를 구했고, 십자가 위에서 그들을 대신해 죽으심으로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오랜 시간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에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마음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선명하게 봅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용서하고 품어 주는 사랑으로 살아가게 되었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삶도 용서와 사랑의 통로를 통해 누군가를 살리며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요셉도 자신의 모든 삶을 통해 백성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보니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고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그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을 깨달았기에 오늘 이와 같이 복수나 용서와 같은 차원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아직 용서라는 말도 꺼낼 수 없을 만큼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원수까지도 사랑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 우리는 용서를 넘어 사랑할 수 있을까요?
- 용서하지 못한 누군가를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어떻게 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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