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10:1-7]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2 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3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되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하지 아니하겠느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
4 네가 만일 내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일 내가 메뚜기를 네 경내에 들어가게 하리니
5 메뚜기가 지면을 덮어서 사람이 땅을 볼 수 없을 것이라 메뚜기가 네게 남은 그것 곧 우박을 면하고 남은 것을 먹으며 너희를 위하여 들에서 자라나는 모든 나무를 먹을 것이며
6 또 네 집들과 네 모든 신하의 집들과 모든 애굽 사람의 집들에 가득하리니 이는 네 아버지와 네 조상이 이 땅에 있었던 그 날로부터 오늘까지 보지 못하였던 것이리라 하셨다 하고 돌이켜 바로에게서 나오니
7 바로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 어느 때까지 이 사람이 우리의 함정이 되리이까 그 사람들을 보내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나이까 하고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을 다시 파라오에게 보냅니다. 그러면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 속에 생기는 의문들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들려주십니다.
모세와 아론은 지금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파라오에게 고통받고 억압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나가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나님께서 진두지휘하고 계십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일이 순조롭지 않습니다. 파라오는 계속해서 마음을 완강하게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내지 않습니다. 왕으로서 경박해 보이는 행동, 즉 말을 번복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모습까지 보입니다.
이 의문은 모세나 아론뿐만 아니라 파라오의 신하들 사이에서도 이미 진행되고 있던 의문이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뜻을 파라오에게 전달했습니다. 골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내지 않으면 메뚜기떼가 지면을 덮는 재앙이 일어날 것이라는 경고였습니다.
이쯤 되자 옆에서 지켜보던 파라오의 신하들 중 누군가는 감히 파라오에게 용기를 내어 말합니다.
“어느 때까지 이 사람이 우리의 함정이 되리이까 그 사람들을 보내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나이까?”
파라오는 이집트가 망하게 되기까지 모세와 아론의 말,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파라오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요? 왜 이렇게까지 어리석은 것일까요? 그의 아집과 고집이 나라를 망하게 하고 백성들을 고통 속에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파라오의 신하들마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파라오의 완악함은 지속되었습니다.
우리는 파라오를 대면하고 있는 모세와 아론은 아니더라도, 살아가면서 비슷한 의문들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떤 고난과 장애물이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우리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일들 앞에 무기력함과 좌절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또 사람들의 완악함이 우리 앞에 나타나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그런 일들을 만날 때 우리는 어떤 마음과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오늘 말씀에는 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할 하나의 태도가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일이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드러내기 위한 표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증거하기 위한 일입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고난이나 장애물, 또 사람들의 완악함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며, 세상의 완악함은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고난을 마주하고 걸어가는 그 길은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삶의 발자국이 되며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이 됩니다.
우리의 기도가 바뀌게 될 것입니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 부르짖는 기도가 하나님의 하나님 됨이 드러나는 일이 되도록,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일이 되도록,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일이 되도록 기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 앞선 우리의 태도도 바뀌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믿음으로 그 문제 앞에 서며, 믿음의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 문제를 다룰지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시각이 넓어진다고 해야 할까요? 모든 문제 상황에서 문제를 붙잡고 있으면 문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드러내기 위한 일로 바라보면 문제는 축소되고 그 뒤에 계신 크신 하나님과 그 문제 앞에 서 있는 나 자신, 그리고 우리의 이웃들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시각을 넓혀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그 뒤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 지금 걱정스럽고 힘든 일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은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하신 것일까요?
- 하나님은 내가 지금 걱정스럽고 힘든 일을 어떻게 다루시기를 원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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