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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출애굽기

[말씀묵상] 출애굽기 9:18-26 “파라오의 신하들”

by 기대어 보기를 2026. 8. 12.

[출9:18-26]
18 내일 이맘때면 내가 무거운 우박을 내리리니 애굽 나라가 세워진 그 날로부터 지금까지 그와 같은 일이 없었더라
19 이제 사람을 보내어 네 가축과 네 들에 있는 것을 다 모으라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릇 들에 있어서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것들에게는 우박이 그 위에 내리리니 그것들이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20 바로의 신하 중에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그 종들과 가축을 집으로 피하여 들였으나
21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 사람은 그의 종들과 가축을 들에 그대로 두었더라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어 애굽 전국에 우박이 애굽 땅의 사람과 짐승과 밭의 모든 채소에 내리게 하라
23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우렛소리와 우박을 보내시고 불을 내려 땅에 달리게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우박을 애굽 땅에 내리시매
24 우박이 내림과 불덩이가 우박에 섞여 내림이 심히 맹렬하니 나라가 생긴 그 때로부터 애굽 온 땅에는 그와 같은 일이 없었더라
25 우박이 애굽 온 땅에서 사람과 짐승을 막론하고 밭에 있는 모든 것을 쳤으며 우박이 또 밭의 모든 채소를 치고 들의 모든 나무를 꺾었으되
26 이스라엘 자손들이 있는 그곳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더라


 

파라오에게 경고한 우박 재앙을 신하들이 들었습니다.

 

그들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종들과 가축을 집으로 피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하들은 들에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박이 이집트의 온 땅에 내렸습니다. 우박뿐만 아니라 불덩이가 섞여 내렸습니다.

 

여기에 불은 [אֵש(에쉬)]라는 단어로 우리가 알고 있는 불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종종 번개를 나타낼 때에도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초자연적인 현상으로서 우박이 떨어지는 가운데 불도 있었거나 우박과 번개가 쏟아져 내렸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분명한 것은 그 일은 매우 공포스러웠을 것이며 실제로 끔찍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떨어지는 우박에 사람과 들짐승들이 맞았고 채소와 나무들이 꺾여져 나갔습니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비명과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세상의 종말이 찾아온 것 같은 일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런 재앙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달랐습니다. 세상에 멸망이 온 듯한 그 순간에 누군가는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조금의 안도감을 가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며 두려움과 슬픔에 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신 고센 땅의 이스라엘 사람들,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에 종들과 가축들을 안전한 곳으로 불러들인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나타난 현실이 달랐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에 두려움을 느낀 파라오의 신하들입니다.

 

이들은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요?

 

아마 가장 기본적으로는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봤을 때 이번에도 재앙이 일어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든 상황들을 보고 경험했다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라 봅니다.

 

그러나 그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다른 신하들입니다. 그들은 왜 이번에도 파라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았을까요?

 

이 지점이 흥미롭습니다. 이 지점에는 하나님의 경고와는 다른 어떤 것이 작용하고 있는 지점입니다. 그것은 ‘파라오’입니다.

 

이 두 그룹은 모두 파라오의 신하들입니다. 파라오를 왕 또는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이들은 사회적으로 파라오가 취하는 태도와 결정을 따라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지점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는 사람들이 더 수긍이 됩니다.

 

파라오는 여전히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모세의 경고를 듣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왕을 섬기는 신하는 왕의 결정과 태도를 따라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사람들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어떤 면에서 파라오의 결정과 생각을 따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파라오와는 다른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일어난 현상을 보니 간과할 수 없다는 합리적인 판단을 했던 것이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합리적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취한 태도는 파라오의 절대 권력에 순응하는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앞에서 하나님은 파라오를 세운 이유가 하나님의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그 일이 이집트의 권력의 중심이며 내부에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절대 권력이며 신으로 추앙받는 파라오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입니다. 그것도 파라오로부터 권력과 재물을 공급받는 신하들 중에 그런 이들이 생긴 것입니다.

 

이집트의 내부에서 파라오의 절대 권력이 흔들리는 지점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들의 선택을 묵상해보겠습니다. 그들의 선택은 합리적인 것이라 생각됩니다. 지금까지의 반복적인 경험에서 볼 때 이번에도 재앙은 말로 그칠 것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재앙을 피할 방법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귀담아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그런 행동이 단지 현명함 때문이었을까요? 반대로 파라오와 같은 태도를 취한 사람들은 현명하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파라오의 신하들과 같은 입장에 놓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그런 순간들을 경험합니다.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거나, 환경의 영향을 받거나 하는 것들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문제를 ‘우선순위’의 문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누군가는 ‘소신’이라고도 말할 것입니다.

 

어떻게 불리든 결국은 ‘자기 결정’인데 신앙 안에서 바라보면 이것은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선택을 통해서 살아가지만, 그 선택이 언제나 자신의 지혜만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깨닫는 것, 그리고 마음을 돌이키는 그 자체가 은혜라 할 수 있습니다.

 

파라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목도하며 우리도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돌아봅니다. 또한 어떤 환경은 우리에게 어리석은 선택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선택은 우리가 하더라도 거기에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도 여전히 겸손해야 할 이유를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하는 이유를 깨닫습니다. 우리가 어리석은 선택을 하거나 어리석은 행동을 강요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다른 사람의 판단과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판단을 바꾼 적이 있습니까?
  2. 하나님의 뜻이 생각되는 것과 내가 속한 환경이 요구하는 것이 다를 때 어느 쪽을 선택하시는 편입니까?
  3. 외면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까?

 

[참고]

 

이집트의 신 중에는 세트(Seth)가 있습니다. 이 신은 폭풍, 천둥, 사막, 혼돈 등 파괴적인 자연현상과 관련된 신입니다.

 

이 신은 거칠고 통제할 수 없는 신처럼 보이지만 태양신 라를 보호하고 혼돈의 뱀인 아포피스와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신은 거칠고 통제하기 어려운 힘을 대표하는 신이라 볼 수 있습니다.

 

세트는 폭풍과 천둥 등 파괴적인 자연현상과 관련된 신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박과 천둥과 불이 뒤섞인 이 재앙은 이집트인들이 자연의 힘을 신격화하여 이해했던 세계관을 흔드는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집트인들이 두려워하고 의지하던 자연의 힘마저 자신의 주권 아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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