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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출애굽기

[말씀묵상] 출애굽기 17:1~7 “맛사, 므리바”

by 기대어 보기를 2026. 9. 16.

[출17:1-7]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3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4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6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7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이스라엘 자손은 신 광야에서 르비딤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다투었습니다. 화가 단단히 난 듯합니다. 다투다는 말은 [רִיב(리브)]인데 싸우다는 의미입니다. 말로 싸우거나 강하게 항의하는 경우에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단순히 모세에게 화를 낸 상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 모세의 말에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는 말이 있습니다.

모세는 이 일로 그 르비딤을 시험하다는 의미를 지닌 [נָסָהH(나싸)]에서 파생된 명사로 [מַסָּה(맛사)] 또는 다투다는 의미의 [רִיבH(리브)]에서 파생된 명사로 [מְרִיבָה(메리바)]라 불렀습니다.

그때에 그들은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면 왜 이 물이 없는 곳으로 인도하셨나? 우리가 물이 없어 우리의 자녀와 가축이 목말라 죽는데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이스라엘 자손은 이런 원망을 쏟아내고 모세를 향해 분노를 터뜨리며 화를 내었습니다.

그때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모세는 하나님께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 ‘돌을 던진다’는 것은 단지 분노를 표현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돌로 치는 행위는 감정 표현을 넘어 실제적인 폭력과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행위였습니다.

그것으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굉장히 분노했으며, 모세는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고 보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응답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데리고 지팡이로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의문이 생기는 지점입니다. 하나님은 호렙 산의 아무 바위가 아닌 어떤 지정된 특정한 바위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바위를 모세가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던 바위였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모세가 그 바위를 알 수 있었던 방법은 하나님께서 모세 앞에 가서 그 바위 위에 서 계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것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가시적으로 하나님이 보이셨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대하는 것 중에 하나가 이런 것일 것입니다. 문제의 해답을 찾고 싶은데, 지금의 모세가 그 반석을 찾을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그렇게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가 그 바위를 찾을 수 있는 통찰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고전10:1-4]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불순종과 우상숭배에 대한 메시지 중 일부입니다. 바울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의 경험을 통해 이 부분을 상기시키고 있는데, 이 말씀에서 하나님이 반석에서 물을 내신 신령한 물을 이야기하십니다.

바울은 그 반석이 단지 과거에 기적을 일으킨 바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으로 우리의 갈증을 해갈하게 하시는 분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찾고 싶은 것은 물을 내는 반석, 즉 삶의 갈증을 해갈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반석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지 못함이 우리의 고민입니다.

어쩌면 이 말씀은 별개의 말씀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우리가 지팡이를 들어 쳐야 할 진짜 실제적인 반석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입니다.

즉, 우리의 삶의 해답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가 선택하고 따르고 실제적으로 살아가야 할 삶의 태도와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의 길을 선택하고 예수님이 행하실 만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그 반석을 지팡이로 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를 돌아봅니다.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어려움을 경험할 때 우리는 불평을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왜 우리의 삶을 도우시지 않는지 내심 서운한 마음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연약함에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은 됩니다. 목마름 자체가 죄는 되지 않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갈구하는 것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필요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그 현실을 근거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임재를 의심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이 맛사와 므리바입니다.

우리는 삶의 다양한 순간들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생명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단지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목마름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지금 느끼고 있는 갈증은 무엇입니까?
2. 그 갈증을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방법으로 행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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