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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출애굽기

[말씀묵상] 출애굽기 20:1~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by 기대어 보기를 2026. 10. 10.

[출20:1-17]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13 살인하지 말라
14 간음하지 말라
15 도둑질하지 말라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열 번째 계명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어렸을 때 이 말씀을 쉽게 외우는 방법이라며 교회학교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던 문구는 ‘십(10)원도 탐내지 말라’였습니다.

 

주요 의미는 ‘탐심’인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이 계명은 여덟 번째 계명과 중복되는 듯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가톨릭은 이 열 번째 계명을 두 개로 나누고 있습니다. 하나는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는 것이며 또 하나는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신명기 5장 21절 이해의 내용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신명기는 아내를 먼저 언급하고 그 뒤에 소유를 따로 구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5:21]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그런 면에서 보면 가톨릭이나 개신교나 십계명에는 중복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개신교는 도둑질하지 말라는 것과 이웃의 집을 탐하지 말라는 것이 중복되는 것 같습니다.

 

가톨릭의 경우는 간음하지 말라와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는 것, 그리고 역시 도둑질하지 말라와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는 것이 중복되는 듯합니다.

 

이런 차이가 있고 중복되는 듯한 계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차이나 중복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외적인 행위에서부터 내면의 마음가짐까지입니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것이나 간음하지 말라는 것이 어떤 외적인 행위에 좀 더 무게를 두었다면 탐하지 말라는 것은 내적인 부분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본문에 ‘탐하다’는 말은 [חָמַד(하마드)]라는 단어로 ‘바라다, 선망하다, 기뻐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가짐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는 나쁜 것은 아닙니다. 바라고 선망하고 기뻐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문제는 무엇을 바라고 선망하느냐입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그것이 죄가 되는 탐심을 이야기합니다.

 

창세기 3장 6절에는 탐스러운 열매가 나옵니다.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그 나무의 열매가 먹음직스럽게 보이고 보기에도 좋고 심지어 먹으면 지혜롭게 될 것 같이 보여 탐하고 갈망하는 그 마음은 죄가 아닙니다. 아마 누구라도 그 열매를 보면 그런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죄가 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갈망하는 마음을 포기하고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열매 이야기를 하나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열왕기하 21장에 기록된 한 사건이 있습니다. 이 사건은 탐심이 어떻게 죄가 되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더군다나 아홉 번째 계명과도 연관이 있는 사건입니다.

 

나봇은 포도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왕 아합은 그 나봇의 포도원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소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조상들이 남긴 유산이라며 왕에게 줄 수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아합은 그 일로 근심하며 식사도 거르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그의 아내 이세벨이 사정을 듣고는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을 계략을 세웁니다.

 

이세벨은 불량자 두 사람을 증인으로 서게 해서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거짓 증언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거짓 증언으로 말미암아 성 밖으로 끌려 나가 돌에 맞아 죽음을 당합니다.

 

그렇게 해서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습니다.

 

나봇과 이세벨은 여섯 번째 계명과 여덟 번째 계명, 아홉 번째 계명, 열 번째 계명에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탐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십계명 중 열 번째 계명은 우선순위에서 밀려서 열 번째 계명이 아닙니다. 열 번째 계명은 십계명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지점에서 다시 모든 계명이 향해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합니다.

 

십계명은 구체적인 행위를 말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결국 그 모든 행위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 면에서 열 번째 계명은 탐심이라는 이름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모든 마음에 대한 계명입니다.

 

물질, 권력, 명예, 인정, 사랑, 욕망 등 모든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바라고 갈망하는 모든 마음의 문제를 다룹니다.

 

이것은 예수님 안에서 완성되는 율법과 같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행위로 정의하고 담을 수 없는 수많은 스펙트럼을 가진 내면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탐심을 없앨 수 없습니다. 탐심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입니다. 그러나 모든 욕망이 정당하거나 선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오늘 열 번째 계명은 이웃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삼으려는 부당한 욕망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탐심 앞에 우리는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탐심이 파괴하고 훼손하는 곳을 향하는지 아니면 지키고 살리고 세우는 곳으로 향하는지 분별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 한 단어 [לֹא(로)]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지 않는다”,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부정의 말입니다.

 

탐심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나 그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면 우리는 과감히 [לֹא(로)], ‘NO!’를 선언하고 포기해야 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누군가의 것을 보고 소유하고 싶었던 경험이 있습니까?
  2. 그와 같은 마음이 들 때 어떻게 해결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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