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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출애굽기

[말씀묵상] 출애굽기 21:1~11 “노예제도 - 해방”

by 기대어 보기를 2026. 10. 14.

[출21:1-11]
1 네가 백성 앞에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
2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성경을 읽으면서 오늘 우리 시대의 윤리관과 부딪쳐 보이는 지점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도 그런 지점들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종’에 대한 법규를 말씀하십니다. 종이란 [עֶבֶד(에베드)]로 종이나 노예를 의미합니다. 몸값을 지불하고 소유하게 된 사람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법규를 세우신 것을 보면 어쩌면 ‘하나님은 노예제도를 인정하시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집니다.

 

우리 시대의 윤리관과 맞닿아 있는 하나님의 뜻은 자유와 해방과 구원입니다. 그런데 노예제도는 그런 가치관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와 같은 문제를 만날 때 우리에게 필요한 접근법은 ‘왜?’라는 물음입니다. 하나님은 왜 노예에 대한 규정을 세우셨을까라는 질문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노예는 다음과 같은 경우입니다.

  • 전쟁에서 포로가 된 사람
  • 채무를 갚지 못한 사람
  • 시장에서 매매된 사람
  • 노예인 부모로부터 출생된 사람
  • 형벌에 따라 예속된 사람
  • 왕실이나 신전 등의 지배에 예속된 사람

문제는 이런 사람들에 대한 성문화된 법이나 규정입니다.

 

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악한 독재자가 통치하는 나라의 경우라면 법은 그런 기능을 상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법은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위해 세워지는 사회의 계약입니다.

 

노예제도와 노예에 대한 법이 존재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습니다. 노예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반대로 노예를 부리는 사람도 또 노예로 예속된 사람에게도 지켜줘야 할 부분들이 필요합니다.

 

고대 사회에 성문화된 법은 함무라비법, 히타이트 법률, 중기 아시리아 법률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법률들이 제정되기 이전부터 노예는 존재했습니다. 한 사람이 노예가 되는 경우는 다양했습니다. ‘인권’이라는 개념이 미미했던 시대에 ‘노예’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차마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특히 ‘권리’의 의미를 알고 있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 것이 노예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법이 없다는 것은 규제나 통제를 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는 언제나 힘을 가진 사람에게 모든 결정권이 주어집니다. 노예는 자기 스스로를 방어하거나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가 미약한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고대 사회의 법이 무섭게 보이고 빈약해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그럼에도 힘을 가진 자가 어떤 선을 넘지 않도록 제한하기 위해 제정된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노예에 대한 법규를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노예 제도를 인정하느냐보다 당시에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던 시대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규정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법규는 그 내용이 많습니다. 그리고 노예가 없는 우리 시대에 그 조항을 적용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냥 건너뛰지 않아야 할 지점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노예제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7년입니다. 노예는 여섯 해 동안에는 주인을 섬기지만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됩니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그것은 다음에 묵상해 보겠습니다.

 

자유인이란 [חָפְשִׁי(호프쉬)]인데 자유로운, 얽매이지 않는, 면제된 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언어학적으로는 연관이 없지만 영어의 hope와 발음이 비슷합니다. Hope는 희망과 기대와 소망을 의미합니다.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유인 ‘호프쉬’가 되는 것이 ‘hope’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일곱째 해에는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도록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일곱째 날에 쉬셨던 안식과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안식년’ 제도에 이처럼 종을 자유롭게 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종은 그 예속된 신분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안식년과는 주기적으로 다를 수 있습니다. 노예가 되기 시작한 해로부터 일곱 해를 계산하는 것입니다.

 

노예에게 자유를 주는 것은 성경에만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당시의 성문법에도 있습니다. 자유로움뿐만 아니라 노예도 가족이나 재산을 소유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예에게 자유의 신분을 주는 것은 율법만이 지닌 특징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노예가 자유인이 되는 조건은 신분과 계약에 따라 달랐고 영구적인 노예의 신분도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신 법률은 일곱 해에는 해방시킨 것입니다.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이는 율법이 다른 모든 법률보다 우위에 있다, 윤리적으로 앞선다는 관점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지점은 안식이라는 의미를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안식은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진 가치여야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안식에 대해서 생각할 때 대부분의 기준은 ‘나’ 자신이었습니다. 내가 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안식’은 나의 권리이지만 노예에게도 권리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세계의 질서이기도 합니다.

 

노예제도는 여전히 우리 시대의 윤리로 받아들일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되는 비윤리적이며 반인권적인 형태입니다.

 

그런데 사실 노예라는 신분은 없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힘의 관계, 물질의 관계 등에서 갑과 을이 존재하며 누군가는 차별과 억압과 불공평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가 누군가를 고용하고 그에게 어떤 일들을 지우는 것이 사회적으로 정당한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마음, 안식의 의미, 모든 사람들이 보장받아야 할 쉼,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삶에 대해 인식해야 합니다.

 

말씀 앞에서 사랑하는 가족부터 시작해서 ‘쉼’의 권리, 마음을 느슨하게 내려놓고 안식할 수 있게 하는 삶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내가 가진 권한이나 영향력 때문에 누군가가 충분히 쉬지 못하거나 자유롭지 못한 상황은 없습니까?
  2. 가족의 쉼을 위해 오늘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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