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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출애굽기

[말씀묵상] 출애굽기 21:3~6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

by 기대어 보기를 2026. 10. 15.

[출21:3-6]
3 만일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 들었으면 그의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4 만일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주어 그의 아내가 아들이나 딸을 낳았으면 그의 아내와 그의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5 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6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


 

눈을 의심케 합니다.

 

다시 한 번 더 보게 되는 말씀입니다.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봐도 이게 맞는 것인지 혼란스럽습니다.

 

오늘 본문은 앞에서의 일곱 번째 해의 자유를 주는 말씀과 충돌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이건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에게 평생의 올무를 씌우는 것 같아 보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 사람이 종으로 들어와 일곱 해가 되면 그는 자유인이 됩니다. 그런데 그중에 그가 결혼을 했다면 그의 아내도 그와 함께 자유인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변수가 있습니다. 만약 그 종의 주인이 그에게 아내를 준 경우입니다. 아마 그에게 아내로 준 여인도 종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럴 경우 그 남성은 일곱 해가 되는 해에 자유로울 수 있으나 문제는 그의 아내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은 그의 자녀들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일곱 해가 되는 해에 선택을 해야 합니다. 홀로 떠나 자유로운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기 위해 자유를 포기할 것인가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가 자유를 포기하기로 결정하면 주인은 그를 법정에 데리고 가서 문이나 문설주에 그를 기대게 하고 송곳으로 귀를 뚫어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종신토록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없는 종신노예가 됩니다.

 

이것은 허점이 너무 많습니다. 악한 주인이라면 이 제도를 이용해 종을 영속시켜 버리려 할 것입니다.

 

어떻게든 피해자가 생깁니다. 한 사람의 자유를 종신토록 빼앗든지, 그 한 사람의 선택으로 인해 그의 자녀가 종이 됩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일곱 해에 자유의 신분이 된다 해도 자녀가 자유를 얻는다는 보장도 규정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 규례는 불편합니다.

 

그러나 묵상적으로 이 규례도 우리에게 의미 있는 지점들을 발견할 수는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사랑’에 대한 부분입니다.

 

남종은 일곱 해째가 될 때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주인이 짜놓은 올무라는 배경일지라도 결국 선택은 본인의 마음입니다.

 

그는 자유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를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유를 포기하는 이유는 사랑 때문입니다.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있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결국 그 선택은 귀가 뚫려지고 종신토록 종이 되는 선택을 하지만 사랑했기에 기꺼이 그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것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려고 이와 같은 제도를 견본처럼 만드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시원하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원하게 이해되지 않는 이 부분이 신비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에서 이상하게 예수님이 보입니다. 물론, 본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직접 예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종의 모습에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종이 아내와 자녀를 사랑해서 스스로 문설주에 붙어 귀에 구멍이 뚫리고 피를 쏟는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라는 나무기둥에 매달려 손과 발에 구멍이 뚫리고 못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표하는 것은 아닙니다. 묵상적으로 그것이 느껴질 뿐입니다.

 

이렇게 묵상하고 성찰해 볼 수는 있지만 본문의 현실에서의 노예에 대한 규례에 대한 대답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이해되지 않는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사랑도 보입니다. 그게 답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어떤 악함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사랑’을 선택하고, 주님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을 선택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그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을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오늘 본문에서 말하지 않는 법규 하나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희년’입니다. 희년은 [יוֹבֵל(요벨)]입니다. 7년이 일곱 번 지난 다음 맞이하는 50년째 해입니다.

그해 속죄일에는 나팔을 불어 온 이스라엘에 자유를 선포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 모든 주민에게 자유가 선포됩니다.
  • 토지도 조상의 기업으로 돌아갑니다.
  • 종도 해방됩니다.
  • 토지도 안식을 누립니다.

그 희년이 선포가 되면 종신을 선택한 노예도, 그의 아내도, 그의 자녀도 모두 자유를 얻게 되지 않을까요? 물론, 이 부분이 실제로 그러했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전통적인 유대교 해석에서는 귀를 뚫은 히브리 종도 희년에는 해방되었습니다.

 

[레25:10]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이렇습니다.

 

[눅4:18-19]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세상은 불합리하고, 악한 것들도 있지만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종신토록 종이 되는 선택도 했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기꺼이 사랑함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을 선택하셨음을 묵상해 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사랑한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감수한 경험이 있습니까?
  2.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자유와 회복을 생각할 때, 오늘 내가 회복시켜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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