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2:13-15]
13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14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15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모세는 다음 날 또 히브리인들이 노동하는 현장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두 히브리인이 싸우는 것을 봤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모세는 누가 잘못했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싸움이었지만 한 사람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잘못한 사람'이라고 번역은 했지만 히브리어를 보면 **רָשָׁע(라샤)**라는 단어로, 사악한, 옳지 않은, 범죄한이라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잘못한 상황이었습니다.
모세는 그 옳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고 묻습니다. 모세는 동포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동포 또는 형제끼리 서로 싸우고 다투거나 같은 형제에게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모세는 어쩌면 싸움을 멈추고 서로 화해할 것이라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오히려 모세에게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두렵게 하는 말을 했습니다.
"네가 이집트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는 그 말에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이미 소문이 나 버렸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파라오도 이 일을 알게 되어 모세를 죽이려고 찾았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땅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오늘 모세는 같은 히브리인들끼리 싸우는 것이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같이 고통받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데 서로 힘을 합쳐 이 어려움을 이겨야 하는 상황에서 서로 싸우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그중 한 사람은 악했습니다.
모세는 동포애와 더불어 정의감으로 그 악한 사람을 책망하려 했습니다. 모세는 이집트의 왕자이며 힘과 권력도 있었고, 또한 그러한 책망은 정의롭고 옳으며 동포애를 고양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온 반응은 오히려 모세를 향한 비난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두 가지 정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모세가 책망했던 사람이 옳지 않은 일을 행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선의나 호의를 자신의 권리로 생각하고 감사할 줄 모르며,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세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지난 묵상에서와 같은 이유입니다. 목적이 옳으면 방법도 옳아야 합니다.
모세는 형제인 히브리인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인을 괴롭히는 이집트인을 죽였습니다. 스스로는 정의로운 일이고 약자를 지켜 주는 일이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지금 들통났습니다.
모세는 싸우는 히브리인에게 옳은 말을 했지만 그것은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모세는 이미 자신의 죄로 인해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수 없었습니다. 모세 본인 스스로가 정의롭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정의로워지라고 말하는 모순이 있는 것입니다.
제 자신을 돌아보아도 부모로서 평소 자녀에게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말의 권위를 상실하게 됩니다.
이 시대의 많은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지금의 모세와 같은 잘못을 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을 말하는 교회가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진리를 말하는 그리스도인이 진리를 따르는 삶을 살지 않습니다. 삶과 실천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말로만, 규모와 힘으로 그것을 증명하려 하는 모습에 진실성이 상실되어 버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니 옳은 말을 해도 돌아오는 것은 비아냥과 조롱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스스로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명해 내는 것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비난을 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 그리스도인으로서 스스로 고쳐야 할 지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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