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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출애굽기

[말씀묵상] 출애굽기 2:1~2 “사랑에 답함“

by 기대어 보기를 2026. 7. 1.

[출2:1-2]
1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레위 여성과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여인은 아들이 잘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습니다.

 

조금 이상하게 보이거나 사람은 잘생기고 봐야 한다는 농담을 해볼 만한 표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잘생기다는 의미의 단어는 [טוֹב(토브)]라는 단어로 좋은, 선한, 훌륭한, 뛰어난 등의 의미가 있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외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는 자신의 아이를 사랑스러워할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엄마들이 지닌 모성애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그렇지 못한 엄마들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본문의 배경에는 파라오의 끔찍한 명령이 있습니다.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나일 강에 던지라는 명령입니다. 이것은 권유가 아니라 명령이며, 이에 불응하는 것은 생명을 걸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어떤 가정에서는 남자아이를 나일 강에 던졌을 것입니다. 비극입니다.

 

이 이야기 속의 엄마도 아이의 생명과 자신의 생명 사이에서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그 고민 사이에서 이 여인은 자신의 아이를 숨깁니다. 그 이유가 잘생긴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단순히 모성애가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이것이 ‘믿음’의 사건임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히11: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이는 단지 모성애로 인해 아이를 숨긴 것이 아님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믿음이 먼저였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믿음의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신앙하는 부모로서 믿음으로 아이를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아이에 대한 인간적인 요소들, 이를테면 외모, 능력, 성격, 태도, 기질이 아니라 그 이면에 하나님께서 맡기신 소중한 생명이라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 아이의 엄마는 믿음의 눈으로 보니 아이가 아름다웠고, 믿음의 눈으로 보니 생명을 지켜내야 했습니다. 비록 자신의 생명이 위험해질지라도 하나님께 믿음으로 순종하는 선택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파라오의 명령을 무서워하기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선택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사랑’인 것 같습니다. 아이를 숨겨주는 이 엄마의 이야기는 이집트의 파라오의 억압 속에 고통받는 이스라엘 민족의 단면을 한 가족의 고통스러운 일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믿음의 통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한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바로 보게 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이 엄마는 그 사랑의 마음에 응답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언제나 사랑을 발견하게 하고, 사랑은 언제나 생명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우리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면 부모로서 우리는 자녀를 사랑하지만, 종종 자녀가 사랑스럽게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자녀도 사랑스럽게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면 타인은 어떻겠습니까?

 

요게벳은 사랑으로 생명을 살렸지만, 파라오는 두려움과 증오로 생명을 죽이려 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끔찍함을 우리는 이집트의 파라오를 통해 계속 목격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사랑을 잃어버리면 모든 관계는 상처와 아픔으로 얼룩질 것입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는 싯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나태주’ 시인은 죽음의 문턱에서 하나님을 만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작고 연약한 것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의 시 「사랑에 답함」이 오늘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한 요게벳의 마음이며,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신 하나님께 답하는 우리가 사람에 대해 지녀야 하는 태도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사랑에 답함
                                나태주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 주는 것이 사랑이다
싫은 것도 잘 참아주면서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자녀나 가족이 사랑스러울 때는 언제입니까?
  2. 자녀나 가족이 사랑스럽지 않을 때는 언제입니까?
  3.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답하는 태도를 지닌다면 그것은 어떤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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