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2:3-4]
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4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이제 놀라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아이의 어머니 요게벳은 아이를 위해 갈대로 만든 상자를 가지고 옵니다. 아마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갈대로 만든 상자였을 것입니다.
요게벳은 그 상자에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합니다. 역청이란 [חֵמָר(헤마르)]로 표면에 바르는 진흙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정확히는 석유의 가장 무겁고 점성이 높은 성분입니다. 상온에서는 검은색이나 짙은 갈색이고, 특징은 매우 끈적거리며 뛰어난 방수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열을 가하면 부드러워지나 식으면 단단해집니다. 오늘날 도로를 포장하는 아스팔트의 주성분이 바로 역청입니다.
자연 상태에서 이 역청은 새어 나온 석유가 시간이 지나면서 휘발성 성분이 사라지고 남은 것이며, 사해의 경우 지진이 일어날 때 검은 역청 덩어리가 수면에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라크나 이란, 시리아 등지에서는 지면에 검은색 액체 형태로 흘러나오는 곳들이 있었습니다.
나무 진은 [זֶפֶת(제페트)]라는 것으로 ‘송진’입니다.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수액이 굳은 것입니다. 이것도 끈적한 성분이 있고 굳기 때문에 틈새를 메우는 용도로 활용되곤 했습니다.
요게벳은 틈이 많은 갈대 상자 사이를 나무 진으로 메우고, 또 역청을 발라 틈을 메우고 물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뛰어난 방수 상자를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아이를 넣습니다. 이 상자 안에 들어간 아이는 뛰어난 방수 처리 때문에 물에 가라앉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창세기에 노아의 가족들이 탄 방주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갈대 상자를 나일강의 강둑을 따라 자라나 있는 갈대 사이에 둡니다. 그리고 아이의 누이가 멀리서 그 상자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요게벳의 마음을 묵상해 봅니다.
요게벳은 아들을 갈대 상자에 넣은 이유는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로서 아이를 더 이상 보호할 능력을 상실했을 때 그 기분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무력감과 상실감 등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그 끝에서 ‘포기’를 해 버립니다. 어쩌면 요게벳도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저로서는 참 어렵습니다. 저는 요게벳이 느꼈던 파라오의 명령 앞에서의 무력감을 경험해 보지 않았기에 쉽게 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요게벳이 아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알고 있기에 그 결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결정이었는지는 공감합니다. 그러기에 그것이 최선이었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침묵하고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요게벳의 마음이나 계획, 이런 행동의 동기나 목적 등에 대해서 침묵합니다.
그런데 요게벳의 선택과 행동에서 느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과 두려움 앞에 내린 비극적이고 고통스러운 결정이지만, 요게벳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끝까지 찾았습니다.
그래서 요게벳은 포기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가 위험해지지 않도록 갈대 상자를 만들었고, 누이를 통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게 했고, 나일강에 그냥 흘려 보낸 것이 아니라 아마도 누군가에게 발견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특정 장소에 두었습니다.
아마 요게벳은 누군가의 긍휼로 아이가 구원받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요게벳이 의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이를 구해 줄 누군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일들을 통제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없는 것이 나뉘는 지점입니다. 믿음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파라오의 명령 앞에 요게벳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요게벳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게벳은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은 믿음으로 맡겼습니다.
요게벳과 같은 상황에 놓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매일 요게벳과 같은 상황을 살아갑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을 만납니다. 어쩌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포기해 버리는 선택을 할 수 있고, 반면에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가지고 원망하고 절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를 할 수도 있습니다.
정답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쉽게 보이지는 않지만 두 가지는 보입니다. 한 가지는 사랑에 대한 것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후 결과를 하나님께 맡겨본 것은 무엇입니까?
- 내가 만들어 본 갈대 상자는 무엇입니까?
- 요게벳의 행동을 믿음으로 설명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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