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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출애굽기

[말씀묵상] 출애굽기 2:5~10 “하나님의 역전과 섭리”

by 기대어 보기를 2026. 7. 3.

[출2:5-10]
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6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7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10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파라오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에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갈대 사이에 상자를 발견합니다. 그녀는 시녀를 보내 그 상자를 가져오게 하고 상자를 열어 봅니다.

 

상자 안에는 아기가 있었고 울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이가 히브리 사람의 아기인 줄 알아봤습니다. 아마도 할례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그때 그 아이의 누이가 지켜보고 있다가 그 공주에게 다가가 말을 합니다.

 

“내가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바로의 딸은 그녀에게 그렇게 하라 하여 그 아이의 엄마를 데려오고 아이에게 젖을 먹이며 그 삯도 받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 아이의 이름을 ‘모세’라고 지었습니다. 모세 [מֹשֶׁה(모세)]는 ‘물에서 건져낸 이’라는 의미로, ‘끌어당기다, 건지다, 구하다’라는 뜻의 [מָשָׁה(마샤)]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그렇게 모세는 이집트 공주의 아들이 되어 살아가게 됩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런 상황을 표현하는 말들 중 어떤 말이 적절할까요? ‘역전’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것 같습니다.

 

짧지만 강렬하게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표현해 주는 것 같습니다.

 

갈대상자를 만들어 그 안에 아기를 담을 때까지 요게벳은 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과 아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상실감과 두려움을 안고 있었습니다.

 

갈대상자를 나일강의 갈대 사이에 두었을 때 어쩌면 누군가의 도움을 간절히 소원했겠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상황을 역전시키십니다.

 

하나님의 역전을 조금 정리해 보겠습니다.

 

아이는 죽을 수밖에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아이를 구해 주셨습니다. 그냥 구해 주신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일의 원흉이었던 파라오, 그가 히브리인들을 근심하여 히브리인들의 남자아이를 죽이려 했는데 하나님은 그 파라오의 딸을 통해 오히려 파라오 밑에서 모세를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요게벳이 아이를 다시는 볼 수 없고 평생을 깊은 죄책감과 무력감, 상실감을 안고 살아갈 형편이었는데 오히려 아이 곁에서 젖을 먹이며 그에 대한 삯도 받으며 자신의 아이가 성장해 가는 것을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껴지는 무력감의 상황에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역전시키셨습니다.

 

이 모든 것에서 우리는 통쾌함도 경험하고, 놀라움도 경험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이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계획에 감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 기도할 이유도 여기에서 발견합니다.

 

그런데 한 번 더 묵상해 보겠습니다. 요게벳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난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살리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제 앞에서 이야기했던 단어를 내려놓고자 합니다. ‘역전’이 분명하지만 다른 단어로 바꾸고자 합니다.

 

그것은 ‘섭리’입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일하심 속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요게벳이 자신의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갈대상자를 만들고 아이를 나일강에 띄워 놓으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살려 주세요”라고 기도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고, 그 믿음에 하나님이 응답해서 이 모든 상황을 역전시켰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요게벳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을 만나지 않지만 늘 고통스러운 문제와 마주하고 있고,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께 살려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것을 믿음이라 생각합니다.

 

요게벳도 그랬을까요? 하나님이 모세를 살려 주신 것은 요게벳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을까요?

 

조금 거시적으로 이 모든 것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70인의 야곱의 가족을 민족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그 자손들이 많아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히브리 민족을 억압하고 있는 이집트의 파라오로부터 떠나야 하는, 혹은 다른 방법이라도 지금의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위해 지금 모세라는 한 사람을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물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하나님께서 건져 내시고, 그것은 한 민족을 구원하는 과정이며 예표가 되는 일입니다.

 

지금 이 일은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 속에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요게벳은 그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그 일이 자신의 아들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 믿었던 것일까요?

 

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 봅니다. 다만 요게벳은 아이를 살려 달라는 간절함뿐이었을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조금 혼란스럽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중에 일어난 일이라면 요게벳은 무엇을 한 것일까요? 요게벳의 기도는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이 하시고자 했다면 갈대상자를 만들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요? 기도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성취됩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계속해서 끊임없이 발견되는 것은 하나님은 모든 일을 초자연적인 강권하심으로 행하실 수 있으시지만 사람이라는 통로를 통해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며 우리가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게벳은 거시적인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대해서는 몰랐습니다. 그녀는 단지 자신의 아이를 살리기 위한 어머니로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없는 지점에서는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으나 결과는 하나님의 뜻에 맡김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에 참여하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 마음과 태도, 신앙의 모습,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에 온전히 맡기는 그것을 하나님은 섭리 속에 포함시키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의 전체를 볼 수 없습니다. 요게벳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순종과 기도까지도 거대한 구원의 역사 속에 담아 사용하십니다. 이것이 기도의 모습이며, 섭리 안에서 살아가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2. 건강한 기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3.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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