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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출애굽기

[출애굽기 1:8~11 “지혜

by 기대어 보기를 2026. 6. 27.

[출1:8-11]
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9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10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이집트에 새로운 파라오가 등극했습니다. 이는 새로운 왕조가 생긴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파라오 개인이 등극한 것인지는 불분명합니다.

 

몇 가지 지지받는 설명은 요셉 당시의 이집트는 힉소스 왕조(이집트의 15~16왕조)이며, 본문의 새로운 파라오는 아모세 1세(이집트 18왕조)라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이집트의 19왕조인 람세스 2세라고 보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그는 요셉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실 요셉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더 놀라울 따름입니다.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고 70명의 야곱의 가족이 한 민족이 될 만큼 장성하게 된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러기에 그때까지 요셉을 기억한다는 것이 더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요셉을 모른다는 것은 단순히 요셉이라는 인물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요셉을 통해 형성된 질서와 관계, 그리고 유산 등을 더 이상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시켜 보면 외국인 수용 정책 등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정치적인 관점으로 보면 요셉이 취한 소수민족에 대한 정책, 이민, 난민, 외국인, 이주노동자 문제 등과 같은 것에 동의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요셉은 야곱의 가족을 이집트의 고센 지방에 거주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 사회에서 꺼리는 일인 가축을 키우는 일을 하도록 함으로써 사회에 간접적으로 필요한 일들을 그들을 통해 얻고, 반대로 이집트인들은 그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상황에 대한 입장이 변했습니다. 새로운 파라오는 고센 땅에 거주하는 이민족에 대한 우려가 생겼습니다.

 

그들의 숫자가 적지 않고 혹여나 그들이 타 민족과 연합하여 이집트를 대적하는 일을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겼습니다.

 

아이러니합니다. 이런 모습은 지금 우리에게도 있는 걱정 중 하나입니다.

 

202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는 약 250만 명의 외국인이 체류 중이며 그중 110만 명의 이주 노동자가 있습니다. 국가별 현황을 보면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이 약 35.2%, 베트남이 12.1%입니다. 그 외에 약 40만 명에 이르는 불법체류자도 있습니다.

 

경기도 화성시, 안산시 등에 이주노동자가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서울의 경우 영등포와 구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통계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상당수 많은 사람들이 이런 통계 속에서 걱정이나 두려움의 감정을 느낍니다. 치안에 대한 불안, 외국인에 대한 정책으로 인한 자국민의 역차별, 외국인의 정치적 개입, 국가의 안보 문제 등 여러 가지 걱정거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주노동자의 국내 수용을 반대하고 외국인을 위한 정책 등을 반대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숫자가 감소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현실적으로는 비수도권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없이는 생산력이 마비되는 상황입니다.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심화되고 있고 저출산으로 인해 새로운 인구가 유입되지 않아 그 공백은 이주노동자로 채울 수밖에 없는 실정이기도 합니다.

 

이집트의 새로운 파라오는 외국인 이주노동자에 해당하는 이스라엘 민족들에 대해 그런 감정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요셉이라는 사람으로 인해 그들에게 주어졌던 일종의 특혜 정책에 반대했고 그들의 숫자로 인해 사회에 끼칠 위험 요소를 민감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런 말을 합니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이 파라오는 이스라엘 민족들에 대한 지혜로운 정책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지혜롭게 짜낸 정책은 이렇습니다.

  • 감독들을 세워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자
  • 그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자

아마 그의 절대 권력 때문만은 아니라 상당수 많은 정치지도자들은 이 파라오의 결정에 동의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노동력을 이용해 엄청난 국가적 이득을 얻으며 동시에 그들을 관리·감독하여 통제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짜낸 정말 지혜로운 정책입니다.

 

지혜에 대해서 말할 때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세상이 나왔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혜는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입니다.

 

만약 하나님께 이주노동자의 문제, 외국인 문제, 이민, 난민 문제 등에 대해 물으면 어떤 지혜를 줄까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이렇게 질문을 하면 두 가지 감정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됩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지 알 것 같지만 왠지 그것이 두렵습니다.

 

만약 두려움의 감정을 느낀다면 그 두려움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물어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나라나 자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타인보다 내 가족을 먼저 챙기는 것이 당연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 당연한 것 앞에서 신앙의 질문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지혜는 우리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진짜 지혜는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기를 원하실까?

 

오늘 말씀을 통해 넓게는 이주노동자, 난민, 외국인 등 사회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어떤 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오늘 내 옆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태도와 생각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아야겠습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요셉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요셉을 알지 못한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있는 우리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에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요?

 


 

[묵상을 위한 질문]

  1. 여러분 주위에 이주노동자가 있습니까?
  2. 이주노동자와 외국인에 대해 걱정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3. 교회 공동체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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