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23:4-8]
4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5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그것을 버려두지 말고 그것을 도와 그 짐을 부릴지니라
6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며
7 거짓 일을 멀리 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8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면 그 주인에게 돌려보내라는 말씀입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지점은 길 잃은 소나 나귀의 주인이 ‘원수’입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 나를 괴롭혔거나 매우 불편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런 경우에는 모른 척하려 합니다. 속으로 ‘꼬시다’ 이런 마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냥 모른 척 못 본 척해 버리고 싶습니다. 그 잃어버린 소나 나귀로 인해 원수 된 사람이 힘들어하거나 손해를 보라고 속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한 번 더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의 나귀가 짐을 싣고 가다가 엎드러졌을 때에도 그것을 그냥 지나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을 도와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부분은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대 사회라는 지점을 생각해 보면 인권이나 존중, 배려 등의 가치관이 매우 미약했던 시대라는 선입견이 드는데 오늘 말씀은 사람의 기본적인 마음을 훨씬 뛰어넘는 높은 수준의 도덕률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다음 말씀도 비슷합니다.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판결을 하는 사람은 정의를 굽게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때로는 그렇게 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정의를 지키는 것보다 실제적인 이익이 우선될 때 그렇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은 도와주어도 자신에게 얻는 유익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반면에 정의에서 벗어나더라도 부자의 편을 들면 얻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판결을 하는 사람이 욕심에 이끌리면 정의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게 되고 판결에 차별을 두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뇌물을 받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뇌물은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 규례는 과거의 규례라는 장벽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높은 도덕률 때문인 것 같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법률로서의 의미보다 하나님의 마음과 원칙이 그대로 드러난 삶의 태도로 읽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읽는 그대로 우리의 삶에 가져와야 될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치는 ‘공정’입니다. ‘차별’을 끊어내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 우리는 언제나 차별을 하며 살아갑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내가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고 나에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 더 마음이 쓰입니다.
반면에 공정은 그것을 넘어 차별하지 않고 모든 이에게 공정하게 대하는 가치입니다. 그것이 맞다는 것은 알지만 감정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와 같은 것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근본적인 가치는 ‘사랑’일 것입니다. 그런데 단지 ‘사랑하라’고 하는 것보다 이와 같은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말씀을 보니 이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버릴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욕심’입니다.
뇌물은 욕심이 있을 때 받게 됩니다. 그런데 당연한 일을 함에 있어 추가의 어떤 대가를 기대하는 욕심을 버리면 뇌물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원수에 대한 것도 동일합니다. 원수가 벌받기를 원하는 마음, 복수해 주고 싶은 마음도 ‘욕심’이 될 수 있습니다.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원수가 불행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동일한 마음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당한 책임을 넘어 상대방의 고통 자체를 즐기거나 개인적인 보복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맞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스스로 내적인 평안과 균형을 잡으면 유혹을 떨쳐낼 수 있습니다. 눈앞에서 누군가의 불행을 볼 때 그것을 그저 불행한 사건 자체로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하면 해결될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불행을 보면서 내가 손해를 볼 것인지, 이 불행의 결과가 누구의 것인지를 따지게 되면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마음 안에서 삶의 원칙과 태도를 바르게 세워 나가야 합니다.
편을 가르고 차별하지 않고 누군가의 도움과 필요에 따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고 모든 일에는 정당한 보상 외에 더 나은 보상을 기대하는 욕심을 버리고 살아가는 것이 공정함을 이루는 삶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어려움을 외면했던 경험이 있습니까?
- 나는 공정하게 판단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감정이나 이익 때문에 누군가를 차별하지는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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