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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출애굽기

[말씀묵상] 출애굽기 3:7~10 “하나님의 때”

by 기대어 보기를 2026. 7. 10.

[출3:7-10]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았다.”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들었다.”
“그들의 근심을 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다시 반복됩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고통을 보시고, 들으시며, 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지금 모세에게 공간을 뚫고 찾아 내려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이집트인의 손에서 건져내겠다.”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겠다.”

의문이 생기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먼저는 왜 지금일까 하는 부분입니다. 이집트의 압제로부터 고통받는 이스라엘 민족의 부르짖음은 모세의 생애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적어도 8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는 당시의 세대의 기준으로 본다면 두 세대가 지나가는 긴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고 기도했으나 그것을 보지 못한 세대가 있었던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구원의 때는 이렇게 늦은 것일까요? 성경에는 그 이유가 조금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5장 16절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15: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이 말씀에서 시기에 대한 단서가 두 개 등장합니다. 하나는 ‘사대’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입니다.

먼저 사대를 살펴보면, 당시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에서 나그네가 되었다가 사대 만에 가나안 땅에 돌아온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사대는 앞에서 이야기했던 한 세대가 40년인 것과는 다릅니다.

출애굽기 6장의 이스라엘 민족의 족보에 의하면 야곱의 아들 레위 -> 고핫 -> 아므람 -> 모세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보면 4대인 것 같지만 사실 이렇게 보면 현실적으로 야곱의 70명의 가족이 출애굽 당시의 200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실제로 여러 세대가 생략되었을 것으로 이해합니다. 즉, 레위, 고핫, 아므람, 모세의 네 대가 아니라 그 사이에 기록되지 않은 세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야곱의 가족이 이집트에 들어간 지 400년 혹은 430년이 지났을 때로 보고 이제 그때가 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인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있습니다. 당시에 하나님이 사대를 언급하신 이유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가득 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 그대로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노아의 때와 같이 심판을 받아야 할 정도로 가득 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아모리 족속의 죄악에 대한 심판으로 아브람의 후손을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아모리 족속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이르렀음을 의미합니다. 오해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차기까지 기다리신 것은 아닙니다.

그 사대라는 기간은 아모리 족속을 심판하기 위해 기다린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악을 참고 기다린 시간입니다. 그들이 죄악에서 떠나 돌아오기를 기다린 시간입니다.

이는 아이러니하게 아모리 족속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시간이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유리 방황하며 고통받는 시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앞에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이제인가? 왜 이렇게 늦게 응답하신 것일까?

어쩌면 하나님이 야속함이나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들이 생기지만 이 모든 일 뒤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대로의 때가 아닌 참고 기다린 은혜와 긍휼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의 순간들을 만날 때, 삶의 괴롭고 힘든 터널을 지날 때, 그것이 길게만 느껴질 때, 하나님의 때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보시고, 들으시고, 아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오래 참으시는 은혜의 시간일 수 있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하나님의 때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2. 응답이 늦어진다 느껴질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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