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2:23-25]
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죽었습니다. 아마 요셉을 몰랐던, 그래서 히브리 민족을 억압했던 파라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여전히 그다음 파라오도 히브리 민족을 노예로 삼아 고된 노동을 시켰습니다.
히브리인들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의문이 생깁니다. 이건 어떤 의미일까요? 상달되다로 번역된 단어는 [עָלָה(알라)]라는 히브리어인데, 올라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히브리 민족의 기도가 하나님께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인의 기도는 그 이전부터, 아마 처음 박해가 시작될 때부터 있었을 것입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도 하나님께 기도했었을 것입니다.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기도했는데 왜 성경은 지금에 와서 ‘상달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또 하나의 의문도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의 고통의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셨는데 하나님이 그 소리를 듣고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을 기억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그들을 기억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여러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 지금까지 히브리인이 드린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았는가?
- 하나님은 히브리인들이 고통받는 것을 그냥 모른 채 했는가?
-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기 위해서는 뭔가가 필요한가?
- 히브리인들의 기도를 듣고서 하나님이 비로소 아브라함과 했던 언약을 기억해내셨다는 것인가?
-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있었단 말인가?
이런 의문이 생길 수도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상달되었다는 것은 이제야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히브리인들의 기도에 어떤 물리적인 양이 차야 한다거나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히브리인들의 기도는 처음부터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표현을 했을까요?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제 언약을 성취해 나가는 구원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점을 표현한 것인데, 우리는 성경의 이 표현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예컨대 지금까지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움직이시지 않았다가 이제야 하나님이 움직이신다. 그러니 이제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구나 라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회고해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파라오가 히브리인들을 가혹하게 대하기 시작하면서 히브리인들은 고통스러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에서도 히브리인들은 더 강해졌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급기야 파라오는 산파들에게 히브리인의 남자아이를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산파들은 파라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산파들은 명령을 어겼으나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파라오는 아예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나일강에 던지라고 명령을 내려 버렸습니다.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어떻게 살아났습니까? 하나님은 파라오의 딸을 통해 모세가 오히려 이집트의 왕자로 성장하게 돌보셨습니다.
이 외에도 얼마나 많은 기록되지 않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은혜가 그 가운데 있었을까요?
하나님은 히브리인들의 기도를 듣지 않은 적도 없으시고 잊어버린 적도 없으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느낄 뿐입니다.
기도했는데 삶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때 우리는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았나 의문을 가지고,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나 의문을 가지고, 왜 안 들어 주시지, 나를 잊어버렸나? 의문을 가집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번역에서 우리의 의문을 더 증폭시켰습니다.
‘기억하다’라고 번역된 단어는 [זָכַר(자카르)]입니다. 그 의미는 우리가 아는 기억하다, 명심하다, 숙고하다 등의 의미가 맞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억하다를 그동안 잊고 있었다가 기억해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억하다의 반대는 ‘망각하다, 잊어버리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카르의 의미는 훨씬 넓은 의미입니다. 성경에는 자카르, ‘기억하셨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언약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하셨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창8: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셨을 때 노아와 그의 가족은 방주에 탔습니다. 그 방주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원의 배였습니다. 노아뿐만 아니라 들짐승들과 가축이 그 배 안에 있었습니다. 창세기 8장 1절에도 하나님이 ‘기억하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아와 그 가족이 방주에 타고 표류하는 동안 하나님이 잊고 있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기억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바람을 불어 물이 줄어들게 하셨다는 문학적인 선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기억하다’의 반대말은 ‘잊어버리다’가 아니라 ‘무시’입니다.
본문에는 하나님에 대한 네 가지 동사가 나옵니다.
- 들으셨다
- 기억하셨다
- 보셨다(25절에 돌보셨고로 번역)
- 아셨다(25절에 기억하셨다로 번역)
이것이 우리의 고통에 반응하시는 하나님의 액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을 들으시면 응답하십니다. 우리를 잊은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결정한 언약 안에서 행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픈 현실을 묵인하시지 않으시며 다 보십니다. 그리고 아십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부터 아는 그 관계적인 앎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운 일 앞에서 우리는 원망하기보다 또 의문을 가지기보다 여전히 한순간도 변치 않으시며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들으시고, 기억하시고, 보시고, 아신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기억함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하나님이 우리를 아신다고 느낀 경험은 무엇입니까?
2. 응답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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