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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에베소서

에베소서 3:14~19 e

by 기대어 보기를 2025. 7. 31.

            
[엡3:14-19]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바울의 기도 입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능히[ἐξισχύω(엑시스퀴오) ~할 수 있다] (이후에 이야기하는 내용들을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즉, 바울은 너희들 (헬라인과 유대인을 포함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들) 이 모든 성도[ἅγιος(하기오스) 거룩한 사람들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로 의롭다 칭함을 받은 사람들로 앞의 너희들과 같은 의미) 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ὑπερβάλλω(휘페르발로) 지니차다, 능가하다, ~보다 뛰어나다] (지식을 뛰어넘는 이라는 의미)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즉, 우리들의 이성으로 이해하는 지식을 뛰어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것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달아 안다는 것인데 여기에서 깨달아라는 단어는 [καταλαμβάνω(카탈람바노)] 라는 단어로 붙잡다, 얻다, 자기 것으로 삼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깨달아 안다는 것은 어떤 무언가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을 의미하는데 헬라어 단어는 그런 의미뿐만 아니라 그것을 붙잡고 얻어서 자신의 것으로 삼는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지식이든, 그것이 사랑이든 무언가를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나의 것으로 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는 많은 지식들이 있는데 그것을 나의 것으로 삼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신앙적인 부분에서 그런 것 같습니다. 가령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임을 아는데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다시 뒤집으면 어떠한 것을 깨달아 안다는 것은 그것을 붙잡아서 나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 입니다. 그럼 이제 말씀의 의미를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바울은 이런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지식을 넘어서는 예수님의 사랑,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문자로 알거나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선 앎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조금 이상한 표현이지만 실제로 그런 앎이 있습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많고 이론적으로 또는 교리적으로 혹은 신학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원리를 아는 것이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그 대속의 은혜로 인해 감격하고 삶의 태도와 목적이 달라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앎이란 그 후자의 앎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기도에도 나오듯 입체적인 앎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존재를 사방으로 완전히 둘러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것, 우리의 앞에, 우리의 뒤에, 우리의 옆에, 우리의 위에,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고 그것이 얼마나 커다랗게 우리의 삶을 감싸고 있는지를 깨달아 알아가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존재의 모든 영역에 충만하게 가득차 있음을 알고 그것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다음의 기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즉,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우리도 충만하게 되기를 기도하는 것 입니다.

만약 우리가 지식을 넘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것을 붙잡고 살아간다면 그 삶은 정말 하나님으로 충만한 삶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이 기도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기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이 기도를 마음에 담아두며 믿음의 공동체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면 어떨까요?
  



        
[묵상을 위한 질문]                                            
1. 지식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안다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있습니까?
2.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단편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이고 충만하게 아는 삶은 어떤 삶이라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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