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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에베소서

에베소서 6:13~20 e

by 기대어 보기를 2025. 10. 7.

[엡6:13-20]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전신갑주의 마지막은 성령의 검 입니다. 아무래도 싸움에 임하는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기'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눴던 허리띠나 흉패나 신발 그리고 방패와 투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보호구였다면 '검'은 상대방을 제압하고 싸움에서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검'은 [μάχαιρα(마카이라)] '단검'을 의미합니다. 마카이라는 고대 그리스에서 사용하던 칼로써 50~60cm 정도 되는 단검입니다. 칼은 크게 찌르는 검과 베는 검으로 나뉘는데 마카이라는 주로 베기 위한 용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적인 칼 모양은 구부러져 있고 날은 한쪽에만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 중 마지막은 마카이라 즉, 단검입니다. 이 단검은 마귀의 간계를 쳐내는 무기입니다.

이 부분을 앞에서 나눴던 방패와 짝 지워서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믿음'은 방패라고 나눴습니다. 공격하기 위해 휘두르는 무기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격하고 휘두르는 무기가 나왔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단검'입니다.

그런데, 공격하고 휘두를 수 있는 무기가 '셩령'인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 문제는 '성령'은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사용하는 힘도 아니고 능력도 아닙니다. 성령하나님입니다.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는 보혜사입니다. 우리를 가르치고 인도하는 영적인 스승입니다. 우리의 모든 환경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성령의 검은 내 손에 쥐고 내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무기가 아닙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하고 입으라고 하고 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갑주마다 단어가 다릅니다. 

진리의 허리띠는 '띠라'
의의 호심경은 '붙이라'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신발은 '신으라'
믿음의 방패는 '가지라'라고 말하는데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은 '가지라'라고 말합니다.

'띠라'라는 말은 [περιζώννυμι(페리조뉘미)]로 '둘러서 졸라매라'는 말입니다.
'붙이라'는 말은 [ἐνδύω(엔뒤오)]로 '옷을 입다'는 말입니다.
'신으라'는 말은 [ὑποδέω(휘포테어)] 라는 말로 '밑에 매다'는 말입니다.
'가지라'는 말은 [ἀναλαμβάνω(아날람바노)] 라는 말로 '집어 올리다, 손에 잡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에 '가지라'라고 한 말은 그 단어가 다릅니다. [δέχομαι(데코마이)] 라는 단어인데 그 의미는 '받아들이라'는 말입니다.

허리띠와 호심경, 복음의 신발과 믿음의 방패는 우리가 힘을 주어 매고 붙이고 손에 잡는 것이라면 구원의 투구와 성경의 검은 우리가 마음을 열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검'은 공격하는 무기지만 그 사용법이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손에 무기가 쥐어진다면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그것을 휘두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악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무기 자체가 우리 손에 쥐어지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성령의 검은 어떤 것일까요? 말씀 그대로 '성령님'이 검이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싸움의 진짜 싸움은 '성령님'이 싸운다는 의미 입니다. 깨진 관계가 있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고, 넘어서야 할 적이 있다면 그 모든 문제 상황에서 치열한 싸움을 직접 싸우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검이 되어서 앞서 나가 싸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검을 휘둘로 싸우려 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성령님이 싸웁니다. 우리는 그 성령님을 받아들이는 것, 믿고 의지하고 기대하는 것이 우리의 싸움법입니다.

또 말씀은 이야기합니다. 그 성령님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역시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대적하고 싸우기 위한 무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 자체로 좌우에 날이 선 검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가지고 우리의 입술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것 만으로 그 말씀의 검이 영적 싸움을 싸웁니다. 이것은 말씀을 많이 안다고 해서 좋은 무기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영적 싸움의 현장에 그대로 들려주십시오. 상대방에게 들려주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들어야 할 사람에게 들려주는 것이고 그 말씀을 들어야 할 사람이 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상대방이 될 수도 있고 우리 자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 그대로 우리가 받아들이면 됩니다. 말씀을 받을 때 그것이 우리의 성령의 검이 됩니다. 성령님을 믿고 맡길 때 그것이 우리의 싸움을 싸우는 검이 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는 것은 우리가 전투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전신갑주를 취하는 것은 전투적으로 사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모든 싸움은 기도로써 간구로써 하나님께 맡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묵상을 위한 기도
1. 영적 싸움의 현장에 하나님의 말씀 즉, 성령의 검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요?
2.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죄의 유혹을 넘어선 경험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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