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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1:2~5 c 빛이 있으라

by 기대어 보기를 2025. 10. 16.

[창1:2-5]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빛이 있으라”  

이 말씀을 조금 더 묵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드러내신 빛은 물리적인 빛입니다. 어둠을 밝히는 역할을 하는 물리적인 현상입니다. 

그러나 빛이 나타남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들 그것이 단지 물리적인 법칙 예컨데 빛이 나타나면 어둠이 사라지는 현상들은 우리를 성찰하게 합니다. 

어둠 속에 있을 때의 두려움은 밝은 빛이 켜지면 사라진다거나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한 그때에 빛이 켜지면 비로소 어디로 가야 할지를 밝히 보게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빛’은 단지 어둠을 밝히는 물리적인 현상을 넘어 우리에게 희망이나 소망 더 나아가 생명과 같은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창세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첫 일하심, “빛이 있으라”는 말씀은 물리적인 빛을 드러내신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태초에 대한 기록이 또 있습니다. 바로 요한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였던 사도 요한이 성령의 충만함으로 복음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있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여기에서 태초는 [ἀρχή(아르케)시작, 처음]로 창세기의 태초인 [רֵאשִׁית(레쉬트)시작, 처음]와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는 히브리어고 하나는 헬라어인 차이뿐입니다. 그러나 그 시점을 구별해 본다면 요한복음의 태초가 훨씬 이전입니다. 요한복음의 태초는 하나님이 스스로 존재하셨던 그 순간의 태초까지 거슬러갑니다. 반면에 창세기의 하나님께서 창조의 일을 시작하실 때의 시간입니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태초에 대한 기록에는 태초에 하나님과 예수님이 계셨다는 것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은 ‘말씀’ [λόγος(로고스)말]이었고, ‘말씀’을 통해 세상이 창조되었습니다. 어떤 것도 ‘말씀’을 통하지 않고서는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구분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세상을 말씀을 창조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음성 이었습니다. 그러나 말, 그 소리가 말씀이신 예수님은 아닙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은 ’말씀‘이라 하였고 또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생명의 빛‘ 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어둠을 가르시고 빛을 드러내시는 물리적인 빛을 만드셨고 그것이 온 세상을 밝히고 드러내게 했다면 예수님은 사람들의 빛으로서 사람의 내면의 어둠을 밝히시고 그 죄를 드러내십니다. 

죄인인 사람은 마치 물리적인 태초의 지구와 같이 몸이 있으나 황폐하고 텅 비어있는 공허한 존재입니다. 그 안에는 생명이 없고 사람을 죽음으로 이끄는 깊은 심연에 잠긴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을 드러내심으로 세상을 생명으로 충만케 하셨다면 예수님은 사람들의 빛으로 사람들에게 임하여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사람의 모든 죄의 실체를 드러내시고 그것을 직면하게 하고 회개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생명의 주로 믿고 따름으로써 예수님께서 이미 행하셨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입어 거룩하고 깨끗한 새사람을 입게 됩니다. 이는 더 이상 어둠 속에 또 깊은 사망의 심연 속에 묶여 있는 죄와 사망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생명의 빛 이신 예수님이 먼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며 물리적인 빛을 드러내심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 되어 생명을 충만하게 함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은 또한 말씀이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되어 이 시대에도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 생명의 위대한 일들을 이끌어 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하고 번민하는 우리에게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 지를 비춰주고 밝혀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깊은 심연과 같은 파도에 잠식되어 가는 우리의 내면이 표류하거나 깊이 잠겨버리지 않도록 붙잡아주고 눈을 들어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교회공도체를 통해 그리고 그리스도인을 통해 이 땅에 남아 있습니다. 앞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의미로 하나님이 창조하시기 이전의 세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눴습니다. 사람들의 내면도, 세상의 물리적인 환경도 혼란스럽고 힘겹습니다. 그러기에 여전히 물리적인 빛을 넘어 사람들의 생명이신 빛이 필요합니다. 

[마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교회는 세상을 비추는 빛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빛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생명의 빛으로 스스로의 내면을 밝히고 더 나아가 세상을 밝혀나가는 영적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 안에는 이 빛이 있습니까?




[묵상을 위힌 질문]

1. 예수님이 생명의 빛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예수님의 생명의 빛을 이어받은 여러분이 비춰 주어야 할 누군가가 있습니까?
3. 생명의 빛이 필요한 그에게 어떻게 빛을 비춰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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